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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느낌!] 친구 싸움도 물베기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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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감독:장규성 출연:차승원.유해진

장르:드라마 등급:12세

20자평:코미디 한우물을 파도 부족한데, 엉뚱한 산을 ….

속절없이 웃기면서도 속이 알찬 코미디를 만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작부터 야박하게 말해서 안됐지만, '이장과 군수'(29일 개봉)도 그런 예다. 가진 재료만 잘 숙성시켜도 먹음직한 요리가 될 것을, 나름대로 진지한 '속'을 넣으려다 원재료의 맛까지 바래버렸다. 서로 다른 재료를 섞는 조리법이 정교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장규성 감독의 전작인 '선생 김봉두'처럼 이 영화 역시 바탕에 훈기를 깔아둔 농촌코미디다. 초등학교 시절 라이벌이 어른이 돼 역전된 처지로 다시 만나 미묘한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젊은 축이라는 이유로 마지못해 동네 이장을 떠맡은 춘삼은 실은 초등학교 시절 따놓고 반장을 하던 인물. 반면 만년 부반장 신세였던 대규는 지방자치선거에서 당당히 승리해 신임군수로 부임한다. 코미디는 캐스팅에서부터 시작된다. 훤칠한 꽃미남 차승원이 이장 춘삼이고, 그에 비해 '안미남'인 유해진이 군수 대규다. 외모로 악의없는 코미디를 만드는 전략은 어린 시절 회상 장면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어디서 찾았는지, 어린 대규 역의 아역배우는 유해진과 퍽 닮아서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대규 어머니(전원주)도 어딘가 닮았다. 오랜만에 장기인 코미디로 돌아온 차승원은 물 만난 고기 같다. 오랜 민원인 도로 포장을 군수인 대규가 마지못해 해결해 주자 이장인 자신의 공인양 촐랑대며 떠벌이는 모습이 문자 그대로 코미디다. 그렇게 우호적인 분위기도 잠깐. 대규가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하기로 결심하자 춘삼이 반대시위의 선두에 서면서 둘은 극단적 대립을 벌인다.

갈등의 균형이 깨지고, 코미디가 리듬을 잃는 것은 이 무렵부터다. 춘삼의 반대는 대규에 대한 반발심과 지역 부동산업자(변희봉)의 배후조종에 의한 것으로 그려진다. 합리적인 군수와 막무가내 이장의 대결이라니, 성패를 쉬 짐작할 만하다. 이장이 옛 친구인 군수의 진심(!)을 통감하게 될밖에. 설령 바깥 세상은 그 진심을 몰라준다 해도 말이다. 차근히 짚어보면, 둘의 갈등은 애초 팽팽해지기 어려운 것이다. 이장에 비해 군수는 너무도 진지하다. 고급 관용차를 마다하고 손수 운전을 하며, 지역경제를 살릴 묘책을 찾아 골몰하는 것이 그야말로 모범 단체장이다. 병든 아버지(남일우)를 모시고 혼자 사는 춘삼과 꽤 단란한 가정을 꾸린 대규는, 이장과 군수라는 직함을 떠나서도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운다.

둘의 갈등에 제대로 힘을 실어 주려면 반장-부반장이었던 과거와 이장-군수인 현재 사이의 연결고리가 좀 더 튼튼했어야 할 것이다. 힌트만 주고 흐름 속에 어영부영 사라지는 디테일이 적지 않다. 대규가 당초 춘삼에게 눈길을 줬던 아내(이현경)와 어떻게 부부가 됐는지, 방폐장 유치 결정이 발표되기 직전 도시인을 대상으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려던 대규의 계획은 어디로 갔는지, 그런 대규를 붇돋우던 말단공무원(최정원)과의 로맨스 조짐은 왜 사라졌는지 궁금증만 남는 대목이 여럿이다. '농촌 코미디'에 농촌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담아내려 한 이 영화의 시도 자체가 과욕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맹렬한 논란이 빚어진 문제를 영화 속에 끌어들인다는 점에 지레 압박감을 느낀 걸까. 부부 싸움처럼 친구 싸움도 '칼로 물베기'라는 것이 이 영화의 결론일 텐데 코미디의 원재료까지 물베기가 되고 말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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