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유전자 변화 막아야 완치|미 국립 암 연구소 발병 원인 규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이 「암과의 전쟁」을 선언한지 20년이 지났다.
닉슨 대통령은 지난 71년12월 『인간을 달에 보내는 꿈이 실현됐듯이 불치의 병으로 인식된 암도 집중적인 재정 지원과 연구를 한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하며 암 극복과 관련된 법에 서명했다.
당시 이를 「메디컬 아폴로 계획」이라고까지 불렀다.
그 후 20년 동안 미국 정부는 암을 극복키 위해 2백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 올해만 해도 미국에서 1백10만명이 암으로 진단 받았으며 이로 인한 사망자가 50만명에 달하고 있다.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보면 73년의 경우 10만명 당 1백64명이던 것이 88년에는 1백72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그러나 일부 암에 대해 치료 성과는 크게 높아졌다. 예를 들면 어린이 백혈병·고환암 등 특정 분야의 생존율은 암과의 전쟁 이후 극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15세 이하의 어린이가 암에 걸렸을 때 거의 모든 경우 죽지는 않을 정도로 치료율이 높아졌다.
미 국립 암 연구소 (NCI)는 국립보건원 (NIH) 산하의 13개 연구소 가운데 하나지만 「암과의 전쟁」 선언 이후 암 연구 소장만큼은 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등 미 정부로부터 집중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 국립보건원은 워싱턴 근교 베데즈다의 1백30에이커 부지에 1만5천명의 연구원 및 보조원과 5백개 침상의 임상 병원을 따로 갖춘 질병 연구의 요람지다.
NCI의 선임 연구원으로 암 발생 구조를 연구중인 한국인 의사 임종식 박사는 최근 암 연구 동향을 두가지로 설명했다.
즉 암의 원인으로는 과거부터 화학물질·유전적 요인·바이러스·식품 등 다양한 것들이 의심돼 왔으나 최근까지의 연구를 종합하면 암은 정상세포가 갖고 있는 유전자의 변화로 발생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
따라서 연구는 정상 세포에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어떤 경우에 정상 유전자가 암 유전자로 변하는가에 집중돼 있다.
그 결과 장암의 경우 암을 일으키는 40여개의 유전자를 발견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더욱 최근의 연구로는 정상 세포에 암을 촉진시키는 유전자가 있지만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도 있다는 것이 증명돼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정상 세포가 암 세포화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동양의 음양 이론에 바탕을 두었다고 해서 이 이론은 「암의 음양 이론」 (Yin & yang Canc-er Theory)으로 불려지고 있다.
따라서 암 치료는 암을 촉진하는 유전자를 억제하고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항진시킴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유전자의 변화는 단 하나의 요인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보다는 여러 가지 요인이 단계적으로 장기간 영향을 주어 발생된다.
따라서 단계마다 영향을 주는 물질이 다르고 유전 인자가 다르기 때문에 이 모든 구조가 밝혀지지 않는 한 암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암 연구와 치료를 재래식 「참호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의 질병은 바이러스 등 병원균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이를 죽이거나 인체에 이에 대한 저항을 길러줌으로써 치료가 가능했다.
그러나 암의 경우는 각 종류의 암마다 그 발생 요인이 다르고 유전자도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암일 경우도 그 단계에 따라 전혀 다른 요인과 유전자가 작용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해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암과의 전쟁은 참호를 일일이 파서 할 수밖에 없으며 걸프전과 같은 일격의 무기가 있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현재 기승을 부리고 있는 에이즈 (후천성 면역결핍증) 보다 암이 훨씬 무섭다는 것이다.
에이즈의 경우 그 발병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이미 발견했기 때문에 이를 치료하는 것은 시간문제나 암의 경우는 모범답안이 없다고 할 수 있다.
NCI의 스트븐 A 로젠버그 박사는 암 치료의 이런 어려움을 풀어줄 열쇠가 유전공학과 연결돼 있는 생물학적 치료라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암 치료는 주로 암 발생 부위의 수술·화학요법·방사선치료에 의존했다.
그러나 암세포의 독특한 성질 때문에 치료가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균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우리 몸은 이에 대해 곧 면역 반응을 일으켜 제거하려한다.
그러나 암세포는 정상 세포에서부터 변화된 것이어서 정상 세포와 유사한 점이 많아 우리 몸의 면역 반응으로 제거하기가 어렵다.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가 한계를 갖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치료는 우리 몸의 세포가 병원균과 대항해 싸우듯 암세포에 대해서도 싸울 수 있도록 면역기능을 활성화시키자는 것이다.
종래의 화학요법·방사선 치료 등은 암과 직접 싸우는 것이었으나 생물학적 치료는 우리 몸이 암을 거부하고 파괴토록 몸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 새 치료법은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면역 물질을 최근의 생명공학기법을 통해 실험실에서 배양 또는 변형시켜 다시 환자의 몸에 주입시키는 것이다.
이런 생물학적 치료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암이 무서운 것은 우리 몸의 한 부위에 암세포가 발생했을 경우 이 세포가 혈액순환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을 초기에 발견해 제거하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게된다.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에 한계가 있는 것은 이런 치료가 우리 몸의 정상 세포에까지도 타격을 주기 때문이며 따라서 특정 부위가 아닌 온몸을 대상으로 이같은 치료를 할 경우 우리 몸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치료는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활성화시켜주는 것이므로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퍼졌을 경우에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
방광암의 경우 이런 생물학적 치료로 이미 극복이 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
로젠버그 박사는 『이런 생물학적 치료는 암 치료에서 새 지평선을 열어주었다』면서 『방광암의 치료가 가능했듯이 앞으로 10년 내에 다른 종류의 암도 이런 치료법으로 극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생물학적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생물학적 물질들이 현재까지 많이 발견돼 일부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까지 됐다.
이중에는 이미 우리 나라 의료 기술진도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인터페론·단 클론항체·인털루킨-2·종양괴사인자 등이 있다.
그러나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암 백신이다.
즉 결핵 예방 주사인 BCG백신이 방광암에 효과가 인정돼 미 식품의약국 (FDA)도 이를 승인해 암 백신에 서광을 비추고 있다.
BCG의 경우 우연히 암세포를 억제하는 기능이 발견됐듯이 각각의 암에 이 같은 백신을 만들 수 있다면 암 정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죽은 암세포에서 추출한 물질로 백신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NCI의 로젠버그 박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멜라노마 암 (피부흑생종) 환자에게 NCI가 최초로 개발한 백신을 투여했다.
즉 이 환자의 암세포에서 추출한 물질을 실험실에서 변형시켜 백신으로 만들어 다시 주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백신기법은 개인마다 면역 기능이 달라 매우 복잡하고 경비가 많이 드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암 치료에는 이같이 첨단의 의학이 동원되고 있는 한편 과거 경험적으로 암에 효과가 있다는 물질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당근류나 오렌지에 많이 들어있는 베타 케로렌 등이 암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하는 작업으로 보조 치료나 예방에 도움을 줄 듯하다. 【워싱턴=문창극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