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시트콤 한 편에 … '거침없이' 청춘스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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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이 MBC에 왔다고요?" 갑자기 고개를 쳐든다. 잡티 없이 뽀얀 두 볼이 빛난다. 23일 서울 여의도 MBC 사옥에서 만난 탤런트 정일우(20.사진). 미 인기배우 웬트워스 밀러의 방한 소식을 잘못 들은 걸 확인하자 이내 실망하는 기색이다(석호필은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밀러가 맡은 '마이클 스코필드'의 한국식 애칭). "저도 석호필 팬이거든요. '프리즌…' 초창기부터 다 봤어요. 와, 드라마 스케일도 크고 연기도 멋있고…."

다른 연기자에게 설레는 걸 보니 '풋내기' 맞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꽃미남 일진' 윤호. 대한민국 누나들을 애태우는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란 뜻의 신조어)'도 또 다른 '완소남'에 두 눈이 반짝였다.

"제 매력이요? 윤호의 매력이겠죠.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뭐, 웃는 모습이 예쁘다곤 하더라고요."

번지는 반달 같은 눈웃음. 김병욱 PD가 오디션 때 반했던 웃음이다. 그 웃음이 애초 '우락부락 근육질에 다혈질의 일진'이었던 윤호 캐릭터를 바꿔놨다. 정일우가 뽑히면서 윤호는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이따금 가출로 존재감을 증명하려는 '감성 여린 말썽꾸러기'가 됐다. 그게 더 먹혔다. 지난해 11월 '하이킥' 시작 때 김 PD는 "몇 달 안에 정일우가 주지훈(드라마 '궁' 주인공)보다 뜰 거다"라고 장담했다. 김 PD가 틀렸다. 몇 주면 충분했다.

요즘 정일우는 벼락출세를 실감하고 있다. 데뷔 반년 만에 찍은 광고가 네 편이다. 특히 음료 비타500 광고는 월드스타 비와 섹시스타 이효리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거침없는 인기다. 얼마 전엔 '하이킥' 유미 역 박민영과 열애설(양측 극구 부인)이 돌기도 했다. '하이킥' 전까진 영화 '조용한 인생'에서 김상경의 아역으로 출연한 게 필모그래피의 전부. 그나마 영화는 '하이킥' 시작 후에 개봉했다. 사실상 데뷔작인 시트콤 한 편으로 청춘스타에 오르다니,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길게 내다보려고요." 반듯한 대답, 기획사가 시킨 모범답안은 아닐까. "함께 출연하는 대선배님들이 많이 지도해 주세요. 나문희 선생님은 연기를 꼼꼼히 끌어 주시고, 이순재 선생님은 인생에 대해 말씀 많이 해 주세요. '연기는 네 평생 직업이다. 겉멋 들지 말라' 등등."

속 깊은 대답 뒤엔 진지한 젊은이가 있다. 워낙 옷을 좋아해 의상디자이너를 꿈꾸던 소년은 고교 때 연극반을 하면서 연기에 매료됐다. 고2 때 기획사 문을 두드렸다. "밖에선 화려해 보였는데 들어와 보니 많이 달라요. 거의 매일 밤새는 촬영에다 공인이라는 부담감도 있고요."

인기 스타의 업보인 인터넷 악플(악성 댓글)에도 시달렸다. 처음엔 상처받았지만 이젠 "악플과 무플(댓글 없음) 중에 어느 게 낫느냐"는 질문에 "신경 안 써요"라고 대답할 정도가 됐다.

학교 때 성적은 극중 윤호와 민호 사이. 사업가 아버지와 교수 어머니, 다섯 살 터울 누나 아래 구김살 없이 자랐다. 가족은 정일우의 1차 팬클럽이자 지지세력이다. 여자친구는 고2 이후로 없다고. "연기 시작한 뒤론 시간이 없고요, 당분간 연기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극중 교사 서민정과 은근한 러브라인 때문에 연하남 이미지가 강한 그다. "나이 따지기보다 제가 기댈 수 있는 여자, 절 휘어잡을 수 있는 여자가 좋아요."

'야동 순재' '식신 준하' 등 독특한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상승곡선을 탔던 '하이킥'은 최근 연장 방영이 결정되면서 스토리가 느슨해지고 시청률도 주춤하다. 제작진은 윤호-민정 러브라인에 승현이라는 경쟁자를 추가하고, 멜로로 편향됐던 에피소드를 재정비하면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종영은 6월 정도. 정일우의 차기작은 미정이다.

"해보고 싶은 역할은 많지만, 하이킥을 하는 동안은 윤호에만 열중하려고요." 서늘한 눈빛. 김병욱 PD가 '우수가 깃들었다'고 칭찬한 눈빛이다. "연기로 따지면 송강호.최민수 같은 정통파는 아니죠. 하지만 일우에겐 고유한 아우라(분위기)가 있어요."(김 PD) 데뷔 반년 차에게 과분한 평가다. 하지만 한번 더 돌아보게 하는 옆얼굴, 그 아우라로 앞으로도 대한민국 누나들에게 '하이킥'을 날릴까.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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