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해외시장서 고전(기로에선 컴퓨터업계: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매출액 13%가 로열티 “남좋은 장사”/기술낙후… 국내시장도 대만에 밀려
『컴퓨터는 수출을 하면 할수록 손해다. 퍼스널컴퓨터의 경우 대만산에까지 내수시장을 뺏기고 있고 해외시장에서는 선진국 제품에 밀리고 있다.』
국내 컴퓨터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6대컴퓨터 메이커가 작년에 수십억∼수백억원씩의 적자를 냈으며 올해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의 첨단산업으로 여겨졌던 컴퓨터업계가 가격경쟁력을 잃은 섬유·신발업종 등에 못지 않게 고전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컴퓨터업계의 기술력이 선진국에 크게 뒤져 로열티부담이 매출액의 13%에 이르는데다 컴퓨터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2년에서 6개월∼1년으로 짧아졌기 때문이다.
현대전자 김동식 부사장은 『수요자가 원하는 제품을 제때에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삼성전자 컴퓨터부문 홍종만 전무는 『국내 컴퓨터업계의 기술은 미국·일본에 비해 10년,대만에 비해서는 2∼3년 뒤져있다』고 말했다.
퍼스널컴퓨터(PC)의 수출을 담당하는 업체의 한간부는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기술력에서 5∼7%가량 앞서있고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시기,금융비용 등에서 각각 5%정도 유리해 전체적인 가격경쟁력이 20%,판매단계에서는 30%이상 앞서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컴퓨터업계의 경쟁력실태는 이같은 수치보다도 용산전자상가 등의 매장에서 더 잘 드러난다.
용산전자상가 컴퓨터상우회 이재근 회장은 PC(AT 286기종)의 경우 국산품이 대당 90만∼1백만원선인데 비해 대만산은 70만∼80만원 수준으로 값이 싼데다 품질도 우수하고 호환성이 뛰어나 대학생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컴퓨터업계는 최근 컴퓨터 핵심부품을 자체 개발하는등 경쟁력강화를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당분간은 영업환경이 크게 호전될 기미가 없다.
전자공업진흥회는 올해 컴퓨터 및 주변기기의 생산을 작년보다 4.8%,수출은 2.3% 늘려잡고 있을뿐이다.
88년 이전까지 연간 50%씩의 초고속성장을 이뤘던 것과 비교하면 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욱 나쁠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감량경영을 위해 1백명 가량을 컴퓨터에서 다른 부문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대만산 저가품이 국내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는데 대해 업계의 불만도 많다.
국내 컴퓨터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기업들이 제품모델 하나만 바꿔도 눈을 부라리는 정부당국이 대만제품에 대해서는 EMI(전자파방해) 시험등 사후관리에 신경을 쓰지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물론 국내업계가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내수시장에서는 노트북형,수출에서는 워크스테이션 등의 제품으로 차별화전략을 펴고 있으며 금성사는 미국내 양판점채널을 확보하고 중남미와 동구권시장 개척 등 마키팅에 주력할 계획이다.
또 대우통신은 미국 현지판매법인인 리딩에지를 통해 대미수출과 중동진출에 승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미국 IBM등 대형업체들의 국내시장공략이 한층 강화될 전망인데다 국내업계의 경쟁도 치열해져 문을 닫는 회사도 나올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더구나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지면서 IBM,애플 등 대형 컴퓨터회사를 빼고는 모두 권투경기처럼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나오고 있어 그만큼 위험부담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컴퓨터업계가 최근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내업계는 지금까지 OEM(주만사장표부착)방식의 수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문 열기도 쉽고 닫기도 쉬운 것이 컴퓨터산업」이라는 말처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업체들이 출혈경쟁을 벌여 업계발전에 걸림돌이 돼왔다.
삼성전자 홍전무는 『현재 상태로는 기술이 뒤져 전면승부는 어렵다』고 말하고 『우선 세계 선진업체와 기술제휴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꾸준히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박의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