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나전칠기 손대현씨|"국보급 작품 만들겠다" 집념 2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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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나전칠기 명장 손대현씨(42·현대공예 대표)는 불혹의 나이답지 않게 맑고 순수한 소년과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나전칠기를 처음 보고「저 아름다운 작품을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느낀 16세 소년기의 열망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오늘까지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인 외길 25년 동안 손씨는 공정상 전통기법을 고수하면서 더욱 세련되고 아름답게, 그리고 더욱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전재료로 자개뿐 아니라 황동선·은선을 사용해 섬세한 선과 곡선을 표현하고 거북 등 껍질을 사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 재료와 표현의 다양화를 꾀하는가 하면 자개를 붙이는 아교가 습기에 약해 잘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옻칠로 직접 붙이는 방법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또 그는 옻칠과 삼베를 몇 차례 덧발라 만드는 건질화병 제작에 찰흙과 새끼줄로 형틀을 만들던 재래식 방법에서 탈피, 실리콘으로 만드는 등 작업공정의 현대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손씨는 갓난아기이던 1·4후퇴 당시 어머니 등에 업혀 어머니와 단둘이 남하해 어려서부터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갔다.
어렵게 국민학교를 마친 뒤 야학으로 배움의 갈증을 채우며 서울역 근처의 한 무역회사에서 사동으로 일하던 중 같은 건물에 있던 나전칠기 공장에서 처음으로 나전칠기 작품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가난하고 외로운 소년이 접한 아름다움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
수업을 시작한지 만10년이 지나면서 그는 나전칠기의 깊이와 색깔에 대해 조금씩 느끼게 되고, 이때부터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넘치기 시작했다.
그의 도제수업은 13년간 계속됐다. 이 기간 중 그는 작은 빈틈도 용납치 않는 까다로운 스승 밑에서 긴장의 끈을 풀 여유도 없었고, 사심 없이 묵묵히 일하는 스승의 모습에서 장인정신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다.
작품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뒤 그는 스승의 인정을 받고 80년 서울 이태원에 방 2개를 얻어 살림집 겸 공방을 차려 독립했다.
손씨는 83년부터 제자를 받기 시작해 현재 6명이 그의 밑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나전칠기는 백골에 생칠을 하고 그 위에 모시를 붙이고 생칠과 토분을 개 고래 바르기를 하고 숯돌로 갈아내고, 또 생칠을 하고 자개를 붙인 뒤 자개 위에 생칠과 자개두께 만큼의 고래바르기로 채운 뒤 다시 갈아낸다. 그 위에 초칠·중칠·상칠과 마무리 광내기 작업 등 최소 3개월간 20여 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전통기법에 따라 만들어진 작품은 내구성·내습성·내열성이 강해 수천년이 지나도 원형이 변치 않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앞으로 내 작품이 국보로 지정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하면 한 작품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소홀히 하면 남지 않고 모두 흩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가 독립 후 10년이 넘는 기간 중 만든 작품은 모두 70여점. 이 중에는 지난 해 대통령 유럽 7개국 순방 때 국가원수들에게 증정했던 나비당초문 서류함도 포함돼 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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