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장 논란/대화창구 없어 겉돈다/단순 안전강조 홍보론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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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과학적인 접근통해 주민 「오해」씻어야/지역발전을 위한 가시적 대책등 필요
지난해 12월27일 정부의 방사성폐기물 관리부지 후보지역 6곳이 공개되면서 다시 일기 시작한 해당지역주민들의 반대시위가 새해들어서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원자력발전을 하고 있는 이상 방사성폐기물은 발생하게 마련이고 이땅 어디엔가는 이것을 갖다놔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과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채 이같은 혐오시설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설치하려한다는 주민들의 첨예한 대립은 쉽게 가라 앉을 것 같지 않다.
도대체 방사성폐기물이란 무엇이고 처분장은 어떤 시설이며 왜 필요하다는 것인지,현지 주민들의 희망과 입장,정부측의 시각,앞으로의 전망 등을 알아본다.<편집자주>
방사성폐기물은 방사성물질 또는 그에 의해 오염된 물질로 어느 곳엔가 폐기·보관돼야 할 모든 것을 말한다.
원자력발전소나 방사성동위원소 이용기관등 방사선구역에서 사용했던 종이·걸레·장갑·작업복 실험기기·장비·교체부품 등이 이에 속하며 사용후 핵연료(SF)도 넓은 의미의 방사성폐기물에 해당된다.
원전의 땔감인 핵연료는 1∼3년간 타고나면 새로운 연료로 교체되며 다 타버린 것이 사용후 핵연료다.
SF는 그속에 남아 있는 핵분열성 물질을 다시 뽑아 쓸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자원으로 저장하게 된다. SF는 방사능이 매우 센 고준위폐기물이기 때문에 방사선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물속에 보관하게 된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핵폐기장」이란 저준위폐기물을 넣을 동굴처분시설과 SF를 보관할 중간저장시설을 말하는 것으로 「핵무기를 버리는 곳」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들 시설은 현재 보관하고 있는 발전소내 시설이 협소하고 앞으로도 방사성폐기물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야하고 방사능물질이란 점에서 국가가 책임지고 집중관리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 가동중인 9기의 원전으로부터 연간 4천5백∼5천드럼의 저준위폐기물이 발생,91년말 현재 3만3천9백50드럼이 각 발전소의 임시저장고에 쌓여 있다. 현재의 저장능력은 약 6만드럼이므로 97년께면 가득 차게 된다.
SF는 연간 약 3백t이 발생하고 있으며 저장능력은 3천3백66t으로 이 역시 98∼99년께면 각 발전소의 수조가 가득 찰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관리시설은 총부지 1백50만평에 정지면적 20만평,시설면적 3만∼5만평으로 이들 두 시설외에 관련 연구시설·환경감시시설·홍보전시관·주거시설이 들어서며 과학기술인력 7백50명이 상주토록 설계할 계획이다.
처분장은 1차로 95년말까지 25만드럼 규모로 건설,2000년초까지 1백만드럼규모로 확장하며 SF저장시설은 가로 75m,세로 19m,길이 13m의 특수수조(약 3천t규모)를 97년말까지 건설하고 2000년까지 1만5천t규모(50년분)로 늘릴 예정이다.
이들 시설은 6겹의 다중방호로 설계·건설된다.
즉 저준위폐기물의 경우 폐기물을 시멘트와 섞어 고화시키고 이를 철제 드럼에 넣은 후 드럼은 콘크리트 방벽으로된 큰 저장고에 넣는다.
SF시설 역시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도록 설계해 건물외벽에서의 방사선량을 자연방사선량의 1백분의 1이하로 제한해 환경영향은 전혀 없다는 것이 원자력환경관리센터측의 설명이다.
해당지역에서의 반대시위가 격화되자 과기처·원자력환경관리센터측은 이들 6곳은 서울대등 대학연구팀들이 추천한 지역으로,이름 그대로 후보지일 뿐이라고 애써 강변하고 있으나 이들중 한곳이 최종 협의대상 지역으로 선정되는 것은 틀림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이 불안감으로 집단행동부터 하기 때문에 대화가 잘 안돼 정부의 뜻을 제대로 설명할 기회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업자측이 주민과의 대화채널을 마련 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은 지금까지 관광지 등에서의 외곽 홍보에만 주력한데다 그나마 「이 시설은 안전하다」「원자폭탄과는 다르다」「자연방사선준위보다 약하다」는등 원론적인 것만 강조해 왔을 뿐이다.
주민을 상대로 이 사업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며 주민과 지역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해줄 것인지 의견을 수렴하는 동시에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더 해야한다는 지적들도 많다.
과기처 김지호 원자력정책관은 ▲민주적인 공개행정 ▲자원지역 우선 ▲지역숙원사업과의 연계추진등 3대원칙에 따라 순리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신종오기자>
◎후보지 주민들 반응과 주장/대부분 “사람살 수 없는 땅”인식/완전철회까지 강경투쟁 결의
『핵은 싫어요. 죽음을 몰고올 방사성 폐기물처리장설치를 결사 반대합니다.』
경북 영일군 청하면과 울진군등 동해중부지역이 또다시 핵몸살을 앓고 있다.
청하면과 울진이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설치후보지로 선정됐다는 정부의 발표이후 지역주민들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설치반대 가두시위,관공서점거 농성등 과격집단행동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천혜의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는 동해안에 핵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면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고 횟집과 농수산물의 판로가 막혀 살길이 막연해진다』며 펄쩍 뛰고 있다.
영일군 청하면민들은 지난해 12월17일 핵폐기장 설치반대 대책위원회(위원장 신성철·60)를 구성한뒤 집집마다 핵폐기장 설치반대를 뜻하는 노란색 삼각형 깃발을 달았으며 면내 30개 마을에는 『자손만대 다죽이는 핵폐기장 결사반대』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방사성폐기장 설치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2월26일부터 세차례에 걸쳐 국도·면사무소점거,지서습격등 가두시위와 농성을 벌이다 지역 국회의원으로부터 『주민들이 반대하면 핵폐기장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믿고 시위를 일단 중단하고 있다.
그러나 핵폐기장 설치반대 대책위원들은 주민들에게 「핵폐기장 설치 결사반대」유인물을 나눠주면서 반대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청하면내 30명의 이장들도 동조 사표를 냈으며 면민 9천명가운데 6천5백여명이 반대서명을 하고,앞으로 대대적인 반핵운동까지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비닐하우스등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최인목씨(40·청하면 상대리 208)는 『보상금을 억만금준다해도 조상대대로 살아온 정든 고향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울진군민들도 『당국이 주민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관광지가 널려있는 울진을 방사성폐기물처리장과 원전을 설치해 핵단지화하려 하고 있다』며 반발,1천∼2천여명이 10여일째 반대시위에 나서고 있다.
군민들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설치반대시위가 계속되면서 주민·행정기관간에 골이 깊어지고 있는데도 당국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는 커녕 강건너 불보듯 시위진압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른 후보지역도 마찬가지로 강원도 양양군의 경우 주민들은 현남·현북면일대 후보지는 국제관광단지로 부상되는 설악권에 위치한데다 자연생태계보호구역으로 핵폐기장설치는 생태계파괴는 물론 지역생존권을 위협하는 처사라며 반대하고 있다.
고성군 현내면 원전건설반대대책위도 『현내면주민 6천여명중 4천여명이 어업에 종사하는 영세어민들로 핵폐기장이 들어설 경우 이들은 생계터전을 잃게돼 살아갈 길이 막막한 실정』이라며 결사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남장흥군민들도 『주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관광단지조성」등 경제시책에는 무관심한 당국이 죽음의 공포를 몰고 올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을 설치하려는 것은 참을 수 없어 결단코 저지할 것을 결의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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