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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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빚진 죄인이다.」「빚지면 문서없는 종이 된다.」
순박했던 우리 조상들은 빚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그래서 빚을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로 부각시키고 있다.
빚을 지는 것은 곧 근심과 가난을 불러들이는 일이기에 「빚지고는 못산다」고 경계했고 「빚만 없으면 부자」라고도 했다.
빚이 무섭기는 개인이나 기업·국가 다 마찬가지다. 능력이상의 빚을 지고 감당할 수 없게되면 개인은 파산,기업은 도산,나라는 재정파탄을 일으켜 거덜나고 만다. 극히 평범한 상식이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경제개발을 위한 외채와 기술도입이 불가피한 현실을 통한 개발은 성공을 거두는 예도 있지만 남미형의 「외채망국론」을 불러일으키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성공신화를 자랑하던 우리의 외채문제가 어느새 크게 악화돼 우려의 소리가 드높다. 지난해말 현재 총외채는 3백82억달러. 국내기업들의 해외 직접 기채와 85년이전의 엔화·마르크화표시 외채의 실세화를 포함시킬 경우 실질 총외채는 4백50억달러가 넘는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일부 전문가들의 전망으로는 몇년 안가 외채가 1억달러에 이르리라는 것이다. 정부측 전망으로도 94년말이면 총외채가 7백억달러로 늘어난다.
우리나라 외채는 85년 4백74억달러가 최고였다가 2백85억달러까지(89년)감소했었다. 순외채도 2년사이에 4배나 늘어나 지난해말 현재 1백22억달러가 됐다.
일반적으로 외채가 7백억달러를 넘으면 이자를 갚기 위한 단기 악성외채를 도입하는 「외채악순환」이 심화된다고 한다. 외채망령에 시달리고 있는 세계 최대외채국인 브라질(90년말 현재 1천1백억달러)의 경우가 그 대표적 예다. 브라질은 우리경제규모보다 훨씬 큰 국민총생산 3천5백억달러에 무역수지 흑자가 1백60억달러인데도 외채에 짓눌려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일각에서도 외채위기론이 심각히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외채통계방식도 외국인의 직접투자·주식투자 등을 포함하지 않는 남미방식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 외채문제가 남미 국가들이나 고민하는 문제가 아닌 당장의 심각한 경제현안이 되고 있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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