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7가] 물의 논리, 그리고 연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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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들에겐 진정 잔인한 봄입니다. 이미 백차승 (시애틀)과 최희섭(탬파베이)이 마이너리그 행을 통보받아 내려 갔고, 추신수(클 리블랜드)와 유제국(탬파베이), 김선우(샌프란시스코) 등은 들쭉날쭉한 시범경기 성적 탓에 ‘오늘, 내일’ 합니다.

심지어 박찬호(뉴욕 메츠)와 김병현 (콜로라도)조차도 5선발을 꿰차지 못해 불펜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박찬호는 구단의 뜻을 수용했지만 김병현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잔뜩 얼굴을 붉히고 있습니다.

그나마 서재응(탬파베이)만이 붙박이 선발로 살아남아 홀로 정상적(?)으로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정규 시즌을 맞이 할 것으로 보입니다.

1994년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처음 으로 접하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입니다. 그야말로 ‘봄은 왔건만 봄이 아닌 ’ 것입니다.

기껏 10여 년이 흘러 찾아온 메이저리그의 ‘코리안 보릿 고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멀리 갈 필요 없이 올시즌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가세로 절정기를 구가할 ‘재패니스 빅리거들’이 답입니다 .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메이저리그 진출 이력은 대조적이었습니다. 한국이 벼가 서자마자 팔아 버리는 입도선매(立稻先賣)였다면, 일본은 적어도 여물 때까지 기다린 다음이었습니다. 원조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가 그랬고, 이후 김병현과 사사키 가즈히로, 최초의 타자들인 최희섭과 스즈키 이치로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물론 양국 프로야구의 ‘저수 능력’ 차이가 결정적이 었습니다. 50년을 앞선 구력의 일본은 일정시기까지 선수들을 잡아둘 수 있는 야구 자본의 힘이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까지도 그렇지 못한 형편입니다 .

하지만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도 결코 작지는 않습니다.

박찬호와 김병현의 성공 이후 무차별적으로 뻗친 메이저리그의 손길에 ‘태평양만 건너면 대박’인양 착각하고, ‘보고싶은 현실만 보고싶어 하는’ 청맹과니의 꿈 쫓기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숱한 도중하차 행렬에 이어 지금 황량 하기만한 무인지경의 허허벌판에 당도할 수밖에 없는 내적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일부 한국 선수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던져졌습니다. 처음 바다를 건너올 때 장밋빛 꿈과 그 정반대의 현실 사이에서 기로의 선택입니다 . 결단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그래서 상류-중류-하류가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게 물의 논리입니다.

그것은 또한 꿈이 아닌, 현실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 메이저리그에서 떨어지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하고 선발에서 밀려나면 불펜 으로 추락하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연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모 천 회귀 본능이 있어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어김없이 자신이 태어난 강 으로 돌아와 알을 낳은 뒤 생을 마감합니다. 귀천하는 과정에서 온 몸이 상처 투 성이가 된다 하더라도 그 먼 여행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다리던 버스가 왔는데도 한사코 태워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정류장에서 머무를 이유는 없습니다. 차라리 연어처럼 돌아오는 게 순리요 상책입니다.

구자겸 USA중앙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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