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간 대화」강조에 특징/김일성 신년사에 나타난 대내외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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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철수·연방제 통일 「고정메뉴」빠져/정상회담·대미일 관계는 언급안해
북한 김일성주석의 금년도 신년사는 경제문제 해결과 남북합의서 이행에 역점을 두면서 대내외적으로 새롭거나 구체적인 정책제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남북합의서 채택,비핵화 공동선언 합의등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예상됐던 남북정상회담,대미·일 관계개선 등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와 함께 종전에 고정메뉴처럼 언급해왔던 주한미군철수,연방제 통일방안과 이를 위한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 소집등도 제외됐다.
이같은 김주석 신년사의 전체적인 기조에는 몇가지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예상됐던 정치적 대목이 빠진 것은 남한정세를 비롯한 국제기류의 흐름을 봐가면서 대응책을 강구해 나가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하면 현재의 정세 자체가 대단히 유동적이고 불투명하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동시에 미리 언급하지 않은채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주한미군철수등 고정메뉴가 삭제된 것은 대남관계를 일단 진전시키겠다고 결정한 마당에 굳이 남측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된 것으로 관측된다.
김주석은 이번 신년사에서 대남정책과 관련,주목할만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통일전선전략을 완화하면서 남측 당국과 남북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점이다.
김주석은 이번에 통일전선을 뜻하는 내용의 언급은 했으나 과거와는 달리 직접 「통일전선」이라는 표현은 쓰지않으면서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서 양측 당국이 역할을 더욱 강조했다.
즉 김주석은 남북합의서를 7·4공동성명과 함께 「조구통일강령」으로 규정하면서 『당국자들은 「북남합의서」가 빈 종이장으로 되지않고 원만히 이행되도록 온갖 성의와 노력을 다해야한다』고 밝혔다.
김주석은 더나아가 ▲민족대단결을 실현하는데 당국자들이 지니고 있는 책임이 크며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당국자들은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 했다.
이처럼 김주석이 남북당국자들의 책임을 강조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며,이는 북한이 지난해 서울 5차 고위급이후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대남 화해 움직임」을 확인해 주는 언급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금년도에 남한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남북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일 것만 확실하다.
그러나 김주석은 이같은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정상회담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대남제의는 하지 않았다.
이는 4대선거가 걸려있는 금년의 남한정세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주석은 이와 함께 남북합의서의 이행을 강조하면서도 교류·협력분야 보다는 군축실현에 보다 비중을 두어 앞으로의 남북협상에서 군사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김주석은 핵사찰문제에 대해 『공정성이 보장되는 조건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선에서 언급했으나 남측과 비핵화선언에 합의한 것을 감안하면 핵사찰을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주석은 대내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수호를 역설하면서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김주석은 전체인민과 당이 굳게 뭉치면 북한식 사회주의는 필승이라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김주석은 이와 함께 경제의 어려움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이의 타개책을 세세히 제시했다.
김주석은 『올해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가장 중요하고 간절한 과업은 전력과 석탄생산을 늘리고 철도운수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주석은 이어 『우리당은 올해를 「대농의 해」로 정하고 농업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기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김주석은 ▲질좋은 인민소비품을 상점들에 가득 채워야하며 ▲도시와 농촌에 현대적인 살림집을 건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김주석의 언급은 현재의 에너지난·식량난·소비재난을 실토한 것으로 북한이 금년에는 경제문제 해결에 온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정책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김주석은 이같은 북한의 금년도 정치·경제·사회적 과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체확립」을 유별히 강조했다.
이는 소연방해체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불가피한 외국과의 경제교류등에 따른 주민들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외관계 측면에서 김주석은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단결 및 비동맹운동의 강화만을 강조했을뿐 대미·대일관계등 핵심과제에 대해선 이렇다할 언급이 없었다.
이는 금년 국제정세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주석의 이번 신년사 내용은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개선해나가면서 그동안 경제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한편,현안으로 걸려있는 과제들에 대해선 상황을 봐가며 대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관측된다.<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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