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대출 시장 '외인 천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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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한국 주택 담보대출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새로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고, 기존 업체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세(勢)를 불리고 있다.

대부 업체로 등록한 이들이 제시하는 담보인정비율(LTV)은 보통 시중은행의 두 배 수준인 70% 수준.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 은행들이 각종 대출 규제로 주춤거리는 사이 자금력을 앞세운 이들이 국내 주택 담보대출 시장을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출 시장에 속속 진출=26일 금융감독원과 서울시에 따르면 홍콩계 투자회사인 스트롱하우스는 지난달 '팬아시안 모기지컴퍼니'라는 대부 업체를 설립하고 국내 주택 담보대출 시장에 뛰어들었다. 스트롱하우스는 주로 아시아 증시 및 기업 지분 투자 등에 참여하고 있으며, 홍콩과 중국에서는 이미 모기지론 전문 업체를 운영 중이다. 골드먼삭스 임원을 지낸 대니 리.릴랜드 선 등이 주요 주주로 있으며, 최근 영업 전문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금융감독원과 서울시는 또 미국 4위 은행인 와코비아뱅크의 계열사 '와코비아리얼이스테이트코리아'가 대부업 등록을 한 것을 확인하고 정확한 진출 목적 등을 파악 중이다.

스탠다드차타드가 설립한 프라임 파이낸셜도 지난해 한국 진출 이후 신용 대출 위주로 영업해 오다 이달 9일부터 서울에 모기지론 전문 지점을 개설하고 주택 담보대출 영업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개설 보름여 만에 벌써 100억원이 넘는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메릴린치가 투자한 페닌슐라캐피탈은 지난해 6월 영업을 시작한 이후 8개월 만에 5000억원이 넘는 대출 실적을 올렸다.

◆수요.공급 맞아떨어져=이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은행권 대출 규제 강화 이후 주택 담보대출 수요가 대부업계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LTV 40% 정도의 대출로는 돈이 부족한 고객들을 타깃으로 하는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이들은 총부채상환비율(DTI) 40% 등 금감원의 규제를 받지 않는 대부 업체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은행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대출해줄 수 있다. 특히 이들이 제시하는 금리는 보통 7~8%대로 제2금융권보다 낮은 수준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교적 낮은 금리로 더 많은 금액을 대출 받을 수 있는 셈이다. 한 외국계 대부 업체 관계자는 "앞으로 외국계 금융기관의 진출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외국계 대부 업체를 중심으로 다시 주택 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높은 금리의 주택 담보대출) 위기가 국내에도 재현될지 모른다는 점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부동산 시장이 급락할 경우 주택 담보대출을 집중적으로 취급하는 이들 업체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급증하는 등 부실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조성목 서민금융지원팀장은 "현행법상 수신 기능이 없는 대부 업체를 금융회사로 볼 수 없는 데다 감독 권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갖고 있다"며 "이들을 규제할 법률적 수단이 없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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