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에스키모가 만든 첫 영화 '아타나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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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발명된 지 1백년이 넘었지만 아직 자기 언어로 된 영화를 갖지 못한 민족이나 국가는 허다하다. '아타나주아'는 에스키모족이 에스키모어로 만든 첫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사(史)적으로 뜻 깊은 작품이다.

서양인의 에스키모에 대한 관심은 각별해 이들의 삶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필름에 담겨졌다. 예컨대 미국의 로버트 플래허티가 1922년에 촬영한 '북극의 나누크'는 에스키모의 일상을 담은 걸출한 다큐멘터리로 지금도 명작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방인에 의한 '엿보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아타나주아'의 감독 자카리아누 쿠눅(46)은 토종 에스키모다. 아홉살 때까지 북극 툰드라 지대에서 생활한 그는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에게 실시하는 영어교육을 받으며 영화에 눈을 떴다.

특히 토요일 밤마다 마을 회관에서 틀어주는 서부영화 등을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쿠눅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스티로폼 이글루에 올림픽 성화같이 생긴 램프를 달아두는 식으로 에스키모를 묘사하는 것에 진저리를 치고 직접 자기 종족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다. '아타나주아'의 어느 한 장면에서도 후진 문명권에 대한 서양식의 신비화나, 반대로 얕잡아 보는 시선을 찾아볼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감독은 물론 주연 배우와 스태프의 90%가 에스키모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이 영화는 에스키모족 사이에 구전돼 온 아타나주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2시간48분에 이르는 대서사시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에스키모족이 새로운 지도자를 필요로 하던 무렵, 사우리는 정체모를 악령의 힘을 빌려 경쟁자인 툴리막을 무력화시키고 우두머리가 된다. 이후 원수지간이 된 두 집안은 아들대(代)에 와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이 표출된다. 툴리막의 아들 아타나주아(빨리 달리는 사나이란 뜻)는 용감한 사냥꾼으로 성장했으나 사우리의 아들 오키는 사냥하는 재주도 뒤지고 심성도 용렬하다. 오키에게는 아버지들끼리 정혼해 준 아투라라는 약혼녀가 있었으나 그녀가 아타나주아에게 마음을 뺏기면서 일이 꼬인다. 결국 결투 끝에 아타나주아가 아투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오키의 여동생 푸야마저 자청해 아타나주아의 둘째 아내가 되자 오키의 질투와 복수심은 극에 달하게 된다.

아타나주아 역의 나타르 웅갈락을 제외하면 모두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피터 헨리 아나치악(오키 역)은 북극 지역의 직업 사냥꾼이며, 실비아 이발루(아투아 역)는 세 아이의 엄마, 루시 툴루가죽(푸야 역)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오타와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대학생이다. '아타나주아'에서 풍겨오는 강렬한 에너지는 이 비직업 배우들의 순수한 열정처럼, 꾸미지 않은 원초적인 생명력에서 나온다. 생존을 위해 물개와 바다표범을 잡아 날 것으로 먹고, 사랑도 미움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그들 삶의 표정은, 세련됐지만 가볍고 얄팍한 현대인에게는 화석처럼 앙상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시시각각 다양한 색채로 변하는 북극의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빙원, 뼈와 돌로 만든 사냥 도구와 개썰매 등은 할리우드 특수효과 기술이 도저히 꿈꿀 수 없는 '원시적 낭만'을 제공한다.

쿠눅은 이 영화로 2001년 칸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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