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최대 장애물 넘었다/남북 비핵화선언 합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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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 김정일체제 안정위해 「화해」택한 듯/합의서 발효·정상회담도 순항 확실시/동시 사찰·팀스피리트 훈련 등도 타결 가능성
북한이 26일 핵재처리시설의 포기까지 수용키로 함으로써 한반도의 핵논란은 마지막 절차만을 남겨놓고 있다.
북한은 이날 판문점에서 열린 핵관련 대표회담에서 종전의 주장을 거의 철회하고 남측의 제안을 대폭 수용했다. 이는 북한이 「핵옵션」을 카드로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냈고 더이상 버티기에는 국제적인 압력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는 판단을 한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우리가 요구해온 것은 ①핵안전협정 서명과 발효 ②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수용 ③핵재처리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의 포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가운데 ①②항은 핵비확산조약 가입국인 북한의 국제적인 의무사항이나,③항 핵재처리시설포기는 국제적 의무조항이 아니지만 핵무기를 제조할지도 모른다는 북한에 대한 의구심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날 접촉에서 이 가운데 ①②항을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의를 통해 「빠른 시일내에」정해진 절차대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북측대표는 『이는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간의 문제이므로 남측을 비롯한 다른쪽에서 언제까지 하라고 요구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이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에 서명의사를 공식통보했다고 밝혔다.
국제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된 재처리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 포기도 공동선언에 포함시키는데 양측이 합의함으로써 더 이상의 논란이 없어지게 됐다.
북한의 사찰은 앞으로 이행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그동안 한국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핵무기와 연계시켰던 것을 분리함으로써 이행이 안될 경우 국제적인 제재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제의는 사찰을 피하기 위한 「구실」마련보다는 해결쪽에 무게를 실었다고 일단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측은 남북동시사찰은 국제원자력기구와의 의무이행과는 별개로 상호 균형 동시사찰을 하자는 것으로 아직 북측안과는 거리가 있다. 북측은 이에 대해서는 남측안을 좀 더 수용해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이동복대변인이 밝히고 있어 절충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단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과는 분리함으로써 종전 주장보다는 균형사찰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판단이다.
북한은 또 그들이 그동안 주장해온 「비핵지대화」를 철회하고 「비핵화」를 수용,명분에 집착하지 않았고,이와 연관된 핵우산·핵적재함 및 비행기의 기항권문제도 남측의 안대로 삭제했다.
북한이 당초 제시한 안은 「핵무기를 적재했거나 적재했을 수 있는 비행기와 함선들의 영공 또는 영해통과,착륙 및 기항을 금지」토록 하고 「핵우산을 제공받는 그 어떤 협약도 다른 나라와 체결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으나 이를 삭제한 것이다. 「미군철수조항도」철회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북한이 한미간의 팀스피리트훈련을 의식해 삽입한 「북과 남은 핵공격을 가상한 일체 군사훈련과 군사연습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남측은 팀스피리트훈련이 ▲핵재처리시설 폐기와 연계돼 있고 ▲국제원자력기구에 대한 성실한 의무이행 자세를 보여줄때 재고될 수 있음을 강조해왔다.
특히 이날 회담에 참석한 한당국자는 『남측이 내년 1월15일까지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핵안전협정을 서명·비준·발효까지 시키라고 시한을 제시한 것을 잘 음미해야 한다』며 이것이 일단 내년 팀스피리트훈련을 중지할 수 있는 조건임을 암시했다. 이 문제는 미국측과도 이미 합의한 사항이나 미국에서 병력 및 장비의 이동을 감안할 때 더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양국은 팀스피리트훈련이 핵전쟁연습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핵무기가 전면 철수된 상황에서는 이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가질 수 있어 북한이 이를 수긍만 한다면 적절한 타협점이 모색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북한은 남측이 제의한 「남과 북은 화학·생물무기의 전면적 제거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참여하고,이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준수한다」는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이 문제는 별도로 협의하자』고 말했다.
오는 28일 2차 회담에서는 이에 대한 남측의 수정제의가 있을 예정이다. 이것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경우 일단은 내년 팀스피리트가 중단되고,이미 5차 고위급회담에서 서명된 합의서의 교환,발효가 된다. 남북정상회담도 가까운 시일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돼 실질적인 「남북화해시대」가 열리게 된다.
북측이 「합의서」에 이어 이렇게 핵문제에서도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는 것은 25일 군사령관직을 인수한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남북문제를 활용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한의 핵사찰이 내년 2월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때까지도 미루어질 경우 유엔안보리차원의 제재가 불가피하다. 이때 예상되는 경제봉쇄는 현재의 경제난을 회복불능으로 만들 것으로 판단된다. 때문에 북한은 핵사찰을 수행하는 대가로 김정일 후계체제를 안정시키는 국제협력을 이끌어 내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김진국기자>
□남북한 비핵화방안 비교
●한반도의 비핵화 등에 관한 공동선언(우리측)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이 땅에서 화학·생물무기를 제거함으로써 조국의 평화통일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을 다짐하며 「핵무기의 확산 방지에 관한 조약」을 준수하고 국제원자력 기구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여 각기 자기측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핵관련 시설과 물질에 대한 전면적인 국제사찰을 받을 것을 수락하면서 기존 국제조약상의 의무를 이행하는데 추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하며 핵무기를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하지 않는다.
2.남과 북은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3.남과 북은 화학·생물무기의 전면적 제거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이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준수한다.
4.남과 북은 쌍방이 보유하는 핵시설과 물질에 대한 국제원자력 기구의 사찰과는 별도로 상기 조항들의 이행을 확인하기 위하여 남과 북의 모든 군사시설과 민간시설,그리고 물질과 장소에 대하여 쌍방이 합의하는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하며,사찰의 대상은 상대측에서 선정한다.
5.남과 북은 4항의 이행을 위하여 필요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쌍방이 합의하는 별도의 기구에서 협의·결정한다.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북측)
남과 북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위험을 제거하고 조선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북과 남은 핵무기의 시험,생산,반입,보유,저장,배비,사용을 하지 않는다.
2.북과 남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 이용한다.
3.북과 남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
4.북과 남은 조선반도 남쪽에 있는 미국 핵무기의 전면적이고도 완전한 철수와 핵기지 철폐를 공동으로 확인하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한다.
5.북과 남은 핵공격을 가상한 일체 군사훈련과 군사연습을 하지 않는다.
6.북과 남은 이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이 공동선언이 발효된후 빠른 시일안에 북남 핵통제 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7.이 공동선언은 북과 남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서로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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