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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안된 신학의 가설 퍼뜨리는 건 룰 위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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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신약이 나왔다고 구약이 효력을 잃는 것은 아니죠."

차동엽(49.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사진) 신부가 도올 김용옥(59)세명대 석좌교수의 기독교 비판에 대해 전면적인 반박에 나섰다.

논란이 됐던 '구약폐기론'에 대해 그는 "구약은 돌판에 새겨진 법과 관계가 있고, 신약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는 법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 율법이 사람들의 눈 앞에 있으면 거부감이 들지만, 마음속에 있으면 달라진다는 것이다.

차 신부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형식상 분명한 단절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내용상 끊을 수 없는 연속성이 있다. 그래서 구약이 효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신약이 나옴에 따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용옥 교수의 기독교 비판에 반박하는 차 신부와의 일문일답.

(김 교수는 저서에서 '하나님'으로 표기했으나, 가톨릭에선 '하느님'으로 부르기에 기사에선 혼용합니다.)

-김용옥 교수의 '하나님 말씀=로고스(이성, Logos)'의 주장을 어떻게 보나.

"이런 주장은 예수를 추상화시키고 있다. 이성으로서의 로고스는 그리스 철학의 개념이다. 요한복음에 사용된 로고스의 의미는 '이성'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썼던 '지혜'다. 히브리어로 '호크마(Hokmah)'이고, 그리스어로 '소피아(Sophia)'다. 요한복음에선 이를 '로고스'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지혜'는 '이성'과 어떻게 다른가.

"성서에도 언급돼 있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에게 지혜의 마음을 주고 자연을 다스리며 온 세상을 창조하였다(예레 10,12)''하느님의 지혜는 사람이 알지 못하고 오직 하느님만이 아신다.(욥 28,12-13.24)' 다시 말해 순수 이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할 때 하느님의 '지혜'가 창조에 참여한 것이다.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그 '지혜'를 뜻한다."

-'회개'의 의미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김 교수는 "'회개'의 원어는 '메타노이아(Metanoia)'다. '마음의 방향을 튼다'는 뜻이다. 그래서 '회개'가 아닌 '회심'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고 했다.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성서적으로 봐도 '회심'과 '회개'는 크게 충돌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썼다. 그러나 당시 유행하던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성서는 그리스어로 씌어졌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히브리어, 성서는 그리스어다. 그 사이에 언어의 전환 과정이 있다. 그리스어인 '메타노이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슈브(Shub)'다. 여기에는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마음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돌린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보면 '회개'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김 교수는 "'요한복음 강해'와 '기독교성서의 이해', 두 권의 책에서 나는 가톨릭을 매우 긍정적으로 봤다. 가톨릭은 결코 내 과녘이 아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지 않는 교회가 많은 개신교"라고 했다. 어떻게 보나.

"개신교계의 문제는 교의가 잘못돼서 자행되는 게 아니다. 실천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는 개신교를 비판하면서 성경 해석의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뿌리를 따라가면 가톨릭의 신학을 함께 건드린 셈이다. 이 때문에 가톨릭은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 있다. 김 교수도 "로마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인류 역사에서 기독교가 너무나 많은 증오를 가르쳤다. 수많은 전쟁이 종교로 인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사실이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기독교 전체가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 안의 일부 지도자들이 죄와 실수를 범했다는 말이다. 이에 교회는 수없이 회개하면서 쇄신해 왔다. 역사의 종말까지 이 과정은 지속될 것이다. 김 교수가 범한 실수는 한 면만 보고 침소봉대한다는 사실이다. 어둠과 빛을 동시에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양심가다."

-김 교수는 성령의 자리에 들기 위해선 이성의 극한까지 가야한다고 한다. 이성의 벼랑 끝까지 가본 자만이 안다고 한다. 어떻게 보는가.

"이성의 극한까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제한돼 있다. 철저하게 철학적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그건 소수의 아주 진지한 철학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대중에게 이걸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예수님이 천국을 선포할 때 논쟁을 일삼는 사람들과 대화하길 싫어했다. 예수님은 논리적이 아니라, 선험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 가령 '하느님이 계시다'라고 했지, 그에 대한 논리적인 접근법을 보이진 않았다. 예수님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라고 했다. 이성적 접근이 가상하긴 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철학적인 소수의 논리에 그칠 뿐이다. 예수님은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 교수는 "요한복음 강해를 했다고 내가 대단한 신학자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건강한 논의를 위한 자극제를 던질 뿐이다"고 한다. 실제 그렇게 받아들일 부분이 있는가.

"먼저 전문가 집단 내에서 논의가 됐어야 했다. 검증되지 않은 의견을 방송사의 인터넷 강의란 대중 창구를 통해 일방통행으로 쏟아내는 것은 룰을 위반한 것이다. 학자의 룰, 전문가의 룰 말이다. 가설을 가지고 대중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 그건 위험한 일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이런 논의는 이미 있었다. 한국 신학계가 너무 상식적인 것들을 신도들에게 안 가르쳐 준다"고 김 교수는 비판한다. 수긍할 수 있나.

"이런 주장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단에선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 커리큘럼의 일환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토론 과정에 있는 커리큘럼을 대중에게 유포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이해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논의의 수위를 조절할 줄 알았던 예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종교간 소통은 경전 해석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우주관과 세계관이 전혀 다른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비교 해석한다는 것은 아카데믹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제한된 시도다. 거기에는 많은 한계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서구 사회에선 역사적 인간으로 예수를 보기도 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예수를 보기도 한다. 김 교수는 "한국 기독교계는 예수의 권위와 신성을 건드릴 수 있는 어떠한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계는 절름발이인 셈"이라고 했다.

"인정한다. 역사비판학적인 관점으로 성서에 접근한다고 해서 성서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의 예수를 통해 예수님의 존재를 더욱 구체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다만 역사비판학적인 접근법에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 기독교계에 이런 식의 접근법이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가령 '한 글자도 비판하지 말라'는 식의 문자주의적 입장은 한국적 기독교 현실의 한계이자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 차동엽 신부=세례명은 로베르토. 1981년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다. 해군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서울 가톨릭대학교와 미국 보스턴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박사 학위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취득했다.

91년에 사제로 서품 되었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또 교리 연구 및 성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래사목연구소'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교회 월간잡지 '참 소중한 당신'의 주간도 겸하고 있다. 평화신문에 성서를 분석한 글을 연재하고, 평화방송 강의와 전국 순회 강의 등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지개 원리'(동이)라는 자기 계발서를 썼다. 발간 100일 만에 10만 부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됐다. 주요 저서로는 '여기에 보물이 있다''밭에 묻힌 보물' 'Hi, 미스터 갓'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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