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투기 정비까지 허위 기재하는 기강 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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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무리 군기(軍紀)가 빠졌다고 해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지난달 추락한 KF-16 전투기의 사고 원인이 정비 불량이었다는 점은 백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사고 기종의 엔진 제작사인 미국 P&W가 2004년까지 불량 부품의 교체를 요청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부품을 바꾸지도 않은 채 '분해 결과 이상 없다'고 정비 기록을 허위 기재했다는 사실엔 말문이 막힌다. 2000년 이후 추락한 전투기가 10여 대에 이른다는 데 놀랐는데 실상을 알고 보니 추락 건수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이 정말 '하느님이 보우하신' 결과였던 셈이다. 어쩌다 대한민국 공군의 기강이 이 지경이 됐는지 통탄할 일이다.

KF-16기는 한 대에 425억원짜리다.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도 100억원 가까이 들어간다. 돈도 돈이지만 어떻게 제정신으로 동료 조종사가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전투기로 곡예비행을 하도록 3년 가까이 내버려둘 수 있었는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이것은 단순한 근무 태만을 넘어 배신이요, 이적(利敵) 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정신상태가 그 모양이니 한 대에 1000억원이 넘는 F-15K 전투기가 맨홀에 바퀴가 빠져 날개가 부러지는 터무니없는 사고까지 벌어지는 게 아닌가. 그러고도 21세기 전략.기술 공군의 기치를 내건다는 게 가소로운 일이다.

이런 해이한 군 기강이 비단 공군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육군 부대에서 다량의 고성능 폭약이 밀반출됐는데도 그것이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군당국이 유출된 것조차 알지 못한 사실이 밝혀진 게 엊그제 일이다. 군은 도를 넘어선 기강 해이를 바로잡아 새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620조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국방개혁 2020'의 첫걸음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중국과 일본은 군사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군비 경쟁에 한창이고 북한은 이미 핵 보유를 선언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군의 태도와 자세는 정신적 무장해제나 다름없다. 햇볕을 받겠다고 집 담장까지 허물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