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죽음(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는 좀처럼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작가였다. 타협할줄 모르는 작가였다. 그래서 그가 필봉을 휘두르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민나 도로보 데쓰!』(모두가 도둑놈이라는 뜻).
그가 집필한 TV드라마 『거부실록』에서 이 말이 전파를 탔을때 사람들은 곧장 이말을 유행시켰다. 80년대초라는 당시의 혼란한 세태를 가장 적절하게 풍자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그는 여덟차례에 걸쳐 그가 집필하고 있던 드라마가 방송중단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방송국쪽에서는 외부의 압력을 벗어나기 위해 타협을 종용했으나 그는 한번도 굽힌 적이 없었다.
방송국쪽의 입장이어야할 연출진·연기진조차도 그의 고집을 두둔했다. 작가·연출자·연기자만 모이면 한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이들은 드라마를 만드는 대신 밤새도록 통음하며 그들의 드라마가 방송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6·25때 고향인 평양을 버리고 남으로 내려온 그는 어렸을적부터 소설가가 되기를 꿈꿨다. 대학에서의 전공을 철학으로 택한 것도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이 영근 것은 소설이 아니라 드라마며 희곡이었다. 대중과의 영합이 인기작가의 첩경이었으나 그것을 철저하게 거부하면서도 그는 곧장 인기작가로 발돋움했다. 그의 독특한 현실관·인생관·세계관이 사람들의 아픈 곳,가려운 곳을 감싸주고 긁어주는데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세계가 그렇듯 그의 생활신조도 힘센 쪽,가진 쪽,옳지 못한 쪽을 철저히 배격하고 약한 쪽,가난한 쪽,옳은 쪽을 옹호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방송국쪽에서 소외받고 있었던 많은 연기자들이 그의 강력한 입김으로 유명 연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그의 생활신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그는 지난 4월 역시 방송중단된 마지막 TV드라마 『땅』의 소설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자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시키고,드라마로 채보여주지 못했던 현실적인 여러가지 문제들을 소설형식으로 나마 재현시키고자 하는 2중의 목적이었다. 그 작업의 완결을 눈앞에 두고 그는 숨을 거뒀다.
데뷔무렵,『칠전팔기한다』는 의미로 이름조차 김기팔로 바꿨던 그는 이 시대의 아픔을 누구보다 처절하게 겪었던 작가였다.<정규웅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