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세상 등졌다던 죽림칠현 처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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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빼어난 속물들

짜오지엔민 지음 곽복선 옮김

푸른역사

496쪽, 2만원

'중국 위.진의 정권교체기에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설명하는 3세기 중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집단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정의다. 산도.완적.혜강.상수.왕융.유령.완함 일곱 사람은 과연 순수한 뜻으로만 정치권력에 등을 돌렸을까. 지은이는 이렇게도 해석한다.

"홀로 은자로 지내면 아무런 영향력도 가질 수 없게 돼 원래의 뜻과는 달리 평생을 은둔하게 된다. 일군의 무리와 짝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은둔을 세상에 알릴 수 있고 규모를 갖출 수 있으며 등급을 갖추게 된다."

죽림칠현은 함께 은둔함으로써 몸값을 높일 수 있었다. 살아있는 신선이 아닌 한, 그들이라고 권력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큰 은자는 조정에 숨어있다'고, 완적은 벼슬을 하면서 몸이 아닌 마음을 숨기는 은둔을 택했다. 혜강 역시 애초에 벼슬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세운 위나라 왕실 사람과 혼인하고 관직도 받았던 그다. 다만 '불사이군'의 도를 지키려다 꼿꼿이 죽어간 것이다. 산도는 나이 마흔에 벼슬에 오른 뒤 조씨와 사마씨 집단이 충돌하자 관직에서 물러난다. 지은이는 이를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 해석했다. 유령은 못 말리는 술꾼으로 은자의 일생을 보냈다. 보잘것없는 가문 출신인 그에게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후대의 선비들에 의해 죽림칠현에서 제명당하는 왕융은 '속물' 그 자체라고도 평가받는다.

물론 죽림칠현이 유교를 버리고 노장의 기풍을 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역사적 평가를 받으려는 긴 안목에서였을 게다. 부적절하게 권력을 잡은 사마씨 집단의 올가미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바보가 되고, 미치광이가 되었다. 십수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일곱 명이나 되는 이들의 이름이 한꺼번에 남은 걸 보면, 이만한 처세법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탁류가 거셀수록 맑은 물은 귀한 법이니까.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를까.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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