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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단체 성가원 「우울한 성탄」/내집 마련꿈 화마에 앗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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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기금마련 물품 4억 불타/누전 부른 구청 “강건너 불보듯”/내년 X마스는 “아름답길”기도만
장애인·부랑인 20여명이 서로 의지하며 모여 사는 천주교 재활단체인 서울 내곡동 성가원(원장 신인수·38)의 올해 성탄절은 특히 우울하다.
10월12일 새벽 이들이 살고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불이 나 「크리스마스선물」을 팔아 재활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던 꿈이 산산조각났기 때문이다.
불은 크리스마스 대목때 원생들이 선물용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가득히 쌓아 놓았던 성모상·종·조각품등 성물 10만여점(시가 4억여원)을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이들 성물중 20%는 1년동안 원생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고 나머지 80%는 선물제조업자들로부터 위탁판매를 위해 받아온 물건이었다.
화재는 전날인 11일 아침 관할 서초구청이 그린벨트안에 불법건축물을 차렸다는 이유로 포클레인을 동원,창고건물 지붕을 뜯어내면서 전선 껍질이 벗겨지는 바람에 새벽에 내린 이슬로 누전돼 일어난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용품 판매수익으로 내년 3월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에 조그마한 성물제조공장을 세워 재활의 발판을 마련하려던 이들의 꿈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때는 모든 희망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주위에는 온통 절망뿐이었지요.』 83년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촌 건설을 목표로 성가원을 설립했던 원장 신씨는 『죽음보다 깊숙한 고통을 맛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신원장·원생들에게 더 큰 슬픔은 화재가 일어난뒤 찾아온 사회의 냉대였다.
구청측에 피해보상을 요구했으나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었으며 철거작업으로 누전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며 핀잔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후 연말이 다가오지만 구청측에선 그 흔한 위로방문조차 한번 오지않았다.
또 30여명이었던 원생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하나 둘씩 빠져나가 2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선물을 맡겼던 한 업자가 휘발유통을 들고 찾아와 『너죽고 나죽자』며 소동을 부리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니 우리들이 만들었던 「크리스마스선물」이 자꾸 생각납니다. 성당에서 정상 어린이들이 우리들의 선물을 사가며 활짝 웃는 꿈도 꿉니다.』
고교시절 근수축증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된 원생 강성호씨(26)는 숯덩이가 돼버린 성탄용품을 잊지 못하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화재현장을 돌며 쓸만한 물건을 찾아보았지만 나오는 것은 타다 남은 조각품과 묵주·촛불뿐이었다.
『고통의 끝에는 행복이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시련이 거세어도 우리의 재활의지를 꺾지는 못할 것입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우울하지만 내년엔 분명 즐겁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신원장은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원생들과 함께 매일밤 슬픔은 91년 한해로 끝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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