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땅 밟은 것 꿈만 같아요”/본사초청 서울 온 박헌영의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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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 어머니묘에 선친고향 흙 선물할 계획/빨리 통일돼 북에 사는 형제도 만났으면”
『북한 부수상의 딸인 내가 서울에 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일 오전 모스크바에서 소련 아에로플로트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박헌영 전북한부수상겸 외상의 딸 박비바 안나씨(63·무용가·소련국립민속무용학교 교수)는 감격해 했다.
남로당 지도자로 북한정권의 2인자로 올랐다가 미제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했던 박헌영의 외동딸인 비바 안나씨는 이날 중앙일보 초청으로 남편 빅토르 이바노비치 마르코프씨(62·화가)와 함께 도착,『수십년동안 그렇게 보고싶었던 아버지의 조국이자 나의 조국인 서울에 오니 어렸을때 이국땅 소련에서 부모를 잃고 고아원을 전전하는 나의 기구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10여일 전부터 서울 방문준비를 하면서 가슴이 설레 거의 밤잠을 설쳤다』면서 『평생 소원이었던 조국방문이 이루어졌으니 서울체류중 조국의 발전상과 전통을 마음껏 보고 「한국정신」을 배워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첫밤을 지낸 박비바 안나씨 부부는 21일 자신을 초청해준 중앙일보사를 방문,김동익 대표에게 인사하고 편집국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박비바 안나씨는 오랜 여행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모국방문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플라자호텔에 여장을 푼 비바 안나씨는 회견내내 가벼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에 온 소감은.
『철이 들면서부터 나의 조국이 한국이라고 생각하며 찾아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2년전까지만 해도 서울방문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지요. 한소수교가 되면서 나의 소원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그동안 TV로만 보았던 서울거리와 발전상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껴보니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통일이 하루빨리 되어 평양에 있는 작은 어머니와 두 4촌남매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체류하는 동안 가고 싶은 곳은.
『아버지의 고향인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내려가 아버지가 살았던 집과 흙냄새를 맡아보고 흙 한줌을 모스크바로 갖고가 이국땅에서 외롭게 죽은 어머니(주세죽씨)묘에 안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꼭 한국의 전통문화와 민속무용 등을 보고 그 정신을 배워 간직하겠습니다.』
­소련이 정국혼란으로 몹시 혼미스러운데….
『소련과 공산당은 이제 존재하지 않고 국가공동체만 있는등 매우 혼미합니다. 말하자면 국민들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채 방황하고 있지요. 안정된 서울이 부럽습니다. 나도 아버지가 경성고보(경기고)를 졸업할 당시 꿈꾸었던 미국유학을 갔더라면 한국인이 되어 안정되게 살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스크바는 식량과 생필품이 고갈됐다는데 겨울준비는 했습니까.
『나와 남편은 예술인이어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최소한 올 겨울을 날 수 있는 식량과 생필품은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정국이 안정되지 않아 걱정입니다. 서울의 많은 상점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물산을 보니 부럽습니다.』
­모스크바에서 「고려인」들과 자주 만납니까.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지만 몇몇 사람과의 교분은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지요. 우리 부부가 서울을 방문한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환영했습니다. 소련에는 해방후 북한정권 창설에 참여했다가 소련파로 몰려 숙청당한뒤 생사를 모른채 행방불명된 인사들의 유가족들이 많습니다.
이들도 나처럼 마음 한구속에 늘 「한」을 갖고 있지요. 나의 서울방문소식을 들은 일부 유가족들이 몹시 부러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요….』<김국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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