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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야 재미 ! … 귀네슈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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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에 진 게 아니라 귀네슈에게 졌다." 프로축구 하우젠컵대회에서 수원 삼성이 FC 서울에 1-4로 대패한 21일 밤, 인터넷 축구게시판에 한 수원 팬이 남긴 글이다. 시즌 개막 뒤 5전 전승(컵대회 포함). 서울의 선수 구성은 지난 시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장수 감독에서 셰놀 귀네슈(55) 감독으로 사령탑만 바뀌었을 뿐이다. 잘나가는 서울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바로 '귀네슈'다. 유럽축구의 변방이던 터키를 2002년 한.일 월드컵 3위에 올려놓은 뒤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던 명장이 부임 3개월 만에 K-리그를 뒤흔들고 있다.

#출전은 능력이다

수원전을 하루 앞둔 20일 오후 구리 챔피언스파크. 귀네슈 감독의 시선이 쉴 새 없이 선수들을 따라다닌다. 코칭 스태프와 이야기를 할 때도 한쪽 눈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수원전에 내보낼 선수를 정하는 중이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에게 "선발 유니폼은 감독이 주는 게 아니라 너희가 뺏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훈련에 다소 불성실하게 임했던 히칼도는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18세의 기성용에게 뺏겼다. 주장 이을용은 "불성실하고 감독의 지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출전은 어림없다"며 "누구든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벼운 달리기에도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훈련은 실전이다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골키퍼들이 성의 없이 슛을 막는 모습이 귀네슈 감독 눈에 띄었다. 골키퍼 출신인 귀네슈 감독은 골키퍼들을 부른 뒤 "연습 때라도 골을 먹으면 가슴 아파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귀네슈 감독은 훈련을 시작할 때 "지금부터 경기를 하겠다"고 말한다. 연습 때 골을 못 넣는 공격수는 실전에서도 못 넣고, 훈련에서 하는 실수는 실전에서도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연구해야 이긴다

귀네슈 감독은 구단이 얻어준 구리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지낸다. 가족(아내, 딸 둘)은 터키에 남겨 두고 왔다. 터키어와 독일어밖에 할 줄 모르는 귀네슈 감독 옆에 24시간 붙어다니는 통역 시난 오즈투르크는 "귀네슈 감독은 잠을 안 잔다"고 했다. 다른 팀 경기 비디오를 한번 잡으면 새벽 3~4시를 넘기기 일쑤다. 수차례 반복해 보면서 분석한 뒤 '족집게식 해법'을 내놓는다. 18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서울 1-0승)이 끝난 뒤 이을용은 "제주가 세트플레이 상황에서 귀네슈 감독이 말한 그대로 하더라"라면서 "감독의 정확한 분석 덕분에 팀이 잘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빨라야 재미있다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 당시 쓸데없이 드리블을 하는 선수, 패스를 받아 일단 멈춘 뒤 다시 돌리는 선수에게는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는 패스 게임의 신봉자다. 선수들에게 쉴 새 없이 움직일 것을 주문한다. 귀네슈 감독은 심박 측정 테스트 후 헐떡거리던 이민성에게 다가가 "괜찮으냐"고 물었다. "말을 하지 못할 만큼 힘들다"고 대답하자 "축구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니까 괜찮다"고 했다. 서울은 올 시즌 경기의 흐름이 매우 빨라졌다. 팬들이 "프리미어리그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축구는 빨라야 재미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장혜수 기자

.귀네슈 FC 서울 감독은 …

-1952년 터키 트라브존 출생

-75~84년 트라브존 선수(골키퍼)

-88~98년 트라브존, 볼루, 안탈랴, 이스탄불, 사카르야 감독(리그 우승 6회, 컵대회 우승 5회)

-2000~2004년 터키 대표팀 감독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00) 8강

-2002년 한.일 월드컵 3위,

유럽축구연맹 올해의 감독

-2004~2005년 트라브존 감독

-2007년 FC서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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