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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 희망을 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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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농업도 시장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면서 "농산품도 상품이고, 상품으로서 경쟁력이 없으면 농사를 더 못 짓는다"고 말했다. 한국 농업도 이제는 더 이상 온실 속에 있을 수 없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데 있다. 아무런 대안 없이 무조건 '경쟁력을 키워라.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농업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한국 농업을 현재의 위기 상황으로 내몬 원인은 대략 세 가지다. 우선 시장 개방으로 수입 농산물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농산물의 피해가 확대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1990년대 초부터 2006년까지 130조원이 넘는 예산을 농업에 쏟아 부었지만 부실과 비효율로 그다지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농업계가 스스로 묻고 찾아야 할 일이다. 농산물 개방 얘기가 나온 것은 20년 전부터다. 그런데도 개방 시나리오에 대응하기 위한 농업계 스스로의 변화는 내세울 것이 없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농산물 시장 개방은 위협이 되지만, 활용 여하에 따라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시장이 열리는 동시에 수출 장벽 역시 낮아지기 때문이다. 관건은 세계에서도 통할 만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가이며, 고품질 농산물을 수출 상품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국제적 트렌드로 자리 잡은 웰빙 열풍에서 보듯 소비자 계층이 나눠지면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품질 좋은 농산물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따라서 고품질.고가격 농산물 시장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낸다면 농업도 분명 희망이 있다.

어려운 한국 농업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는 것이 최근 일고 있는 농업계 내부의 변화 움직임이다. 2005년 11월 한국벤처농업대학에서는 1000여 명의 벤처 농업인이 모여 '한국 농업 희망 선언문'을 채택하고 농업인 스스로 변화해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자고 다짐했다. '작지만 강한 농업'을 지향하는 이들 벤처 농업인의 성공 사례는 농업도 얼마든지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 농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세 가지 액션 플랜을 제안한다. 우선 농업의 1.5차화를 제안한다. 농업의 1.5차화는 1차 산업인 농업에 다른 산업 혹은 소프트 요소를 융합해 +0.5차만큼의 변화를 주자는 얘기다. 농업은 단순히 '먹는' 산업에서 즐길거리가 결합된 '먹고 즐기는'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농산물=먹거리'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식품.관광.레저.제약 등을 포함한 관련산업과의 연계를 모색하고 예술.문화 분야 등과도 연결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둘째, 시장 지향형 농업 경영의 실현을 제안한다. 무작정 농사 짓는 시대는 지났다. '농업인의 역할은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까지'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시장에서 팔릴 만한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까지 영역을 넓혀야 한다. 이를 위해 농업인도 비즈니스 경영 차원에서 농업을 바라보고, 마케팅 및 네트워크를 활용해 새 시장을 찾아나서야 한다. '소비자와 함께 생각하고, 소비자와 함께 감동하는' 농업 경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셋째, 사람의 변화가 중요하다. 그동안 정부의 쏟아 붓기 식 지원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농업인 스스로의 책임도 크다.

"우리도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포기하는 농가가 나올까 그게 걱정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부의 지원이나 돈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희망입니다." 한 젊은 농부가 보내온 편지 속의 글처럼 지금 필요한 것은 때늦은 위로금이 아니라 '희망'일 것이다. 희망은 곧 변화에서 나온다. 변화와 경쟁력, 이것이야말로 우리 농업의 키워드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