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잇는다” 설레이는 문산/실향민들 술잔들며 고향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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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임진강 새우잡이배 아직도 눈에 선해/서울사람 투기 부추길까 오히려 걱정”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채택이후 실향민들이 유난히 많이 사는 경의선 철도중단점 문산의 읍내 음식점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실향민들의 「열차타고 고향가는 얘기」로 떠들썩 하다.
부동산중개업소에는 벌써부터 서울 투기꾼들이 찾아들어 약삭빠른 눈매로 투기대상을 물색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선로가 끊긴 지점은 문산역플랫폼에서 북쪽으로 2㎞쯤 떨어진 속칭 「여우골」입구.
정부는 이곳부터 군사분계선이 통과하는 장단변까지의 12㎞에 철도를 놓아 북측지역인 장단∼개성으로 연결,45년 12월1일 38도선 분단과 함께 끊긴 경의선을 다시 잇는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땅주인들과 철도건설예정부지 매입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통행교류원칙이 합의됨에 따라 복원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
『마음만 먹으면 10개월이면 연결할 수 있다던데…. 하루 빨리 복원이 돼 장단역 플랫폼에서 힘찬 기적을 들으며 「철도인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고향이 장단으로 1·4후퇴때 가족들과 피란나온 문산역 역무원 안인승씨(53).
안씨는 65년 철도에 발을 들여놓은뒤 고향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70년부터 20여년간 문산·능곡등 경의선 역에서만 근무해온 「경의선의 산 증인」.
『6·25전까지 장단은 남쪽지역이었으나 지금은 3분의2가 북측에 속해 있습니다. 인삼이 많이 나 살기도 넉넉하고 인심도 후했는데…. 임진강을 가로지르던 새우잡이배가 눈에 밟혀 잊혀지질 않는군요.』
이같은 실향민들의 기대치보다 더 치솟고 있는 것이 이 지역 부동산값이다.
89년 문산 일대를 남북물자교류 창구로 개발한다는 정부계획이 발표되면서 부동산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한 것.
평당 3만∼4만원하던 야산이 2∼3년사이 30만∼40만원을 호가하고 있으며 택지가격도 88년이후 2∼3배 뛰어 평당 1백만∼1백50만원에 이른다.
최근 역앞 12평짜리 상가는 1억2천만원에 거래됐다.
주민들은 『문산읍일대 야산은 대부분 서울 투기꾼들 손에 넘어가고 투기지역이 경의선 건설예정부지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번지고 있다』며 『이번 남북고위급회담합의서 체결의 여파로 투기가 되살아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동안 나왔던 매물들이 며칠사이 모두 거둬들여져 팔려는 사람은 없고 살사람만 나타난다는 것.
『당장 통일이 되는 것처럼 투기까지 하면서 난리들인데 경거망동할수록 통일은 더 멀어집니다.』
황해도 사리원시가 고향으로 감리교회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해방이후 「유산계급」으로 몰려 교사직을 박탈당하며 고초를 겪다 1·4후퇴때 단신 월남했다는 이시영씨(72·냉면집 주인)는 이같은 현실을 크게 안타까워했다.
『나도 통일이 되면 경의선을 타고 제일 먼저 고향으로 달려갈 사람입니다. 그러나 통일은 성실하고 인내있게 추진해야 합니다. 분위기만 들떠 이리 쏠리고 저리 밀리다가는 아무리 좋은 합의서도 한낱 휴지로 변합니다.』
이씨는 『철마가 통일을 향해 달리기 위해서는 「성실」이라는 연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문산=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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