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학이 수능 비중 강화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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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올해 정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혼란의 가능성이다. 과목별 수능등급을 가지고 어느 대학을 지원할지에 대한 판단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수능이 점수가 아닌 등급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활용됐던 배치표와 같은 대학 진학의 참고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설 학원들은 새 입시제도에서도 배치표를 작성한다고는 하나 그들도 어떻게 작성할지에 대한 타당한 방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의 배치표가 신뢰성을 갖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올해의 정시는 로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력이 아닌 눈치와 배짱에 의한 대학진학이 될 수 있다. 대혼란에서 오는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간다.

현 정권에서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올해의 정시와 대선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정시에서 대혼란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대선판도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현 정권에서 주요 대학들이 수능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을 밉게만 볼 일은 아니다.

대학들은 올해 정시에서 대혼란의 가능성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능의 역할을 확대한 것이다. 왜 수능인가. 첫째, 현재 대학들이 활용하고 있는 선발 기준 가운데 수능이 가장 객관적이다. 객관성이 높은 선발기준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어느 대학을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하고 대혼란의 가능성을 낮춘다. 둘째, 수능은 패자부활을 가능케 한다. 학생부에서 높은 등급을 받지 못한 학생들이 수능을 통해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셋째, '죽음의 트라이앵글'(학생부.논술.수능을 모두 잘해야 하는 것)에서 학생들이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세 가지를 모두 잘해야 하는 것에서 어느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것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넷째, 일반계 고등학교가 특목고보다 불리할 것은 없다. 수능과 같은 객관적 기준 아래에서는 특목고나 일반계고가 모두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나 노력 여하에 따라 일반계 고등학교들도 특목고 못지않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현 정부와 코드를 같이하는 일부 교육단체들이 이번 주요 대학들의 입시안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전체를 보지 않고 일부분만을 확대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부는 약화되지 않았다. 주요 대학들은 정부와 약속한 학생부 중심 전형들을 결코 적지 않은 범위에서 제공하고 있다. 특목고에 특별히 유리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수능은 정시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요소였다. 정시에서 수능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수능으로 줄 세운다고 하나 입시에서 어떤 전형요소로든 줄을 서지 않겠는가. 학생부로 줄을 서든, 논술로 줄을 서든 마찬가지다. 그래도 수능은 훨씬 더 객관적이다.

대학들은 어떠한 전형 방식이 가장 합리적인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인재 양성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입시 문제는 대학들에 맡겨라. 어설픈 좌파적 평등주의에 빠진 일부 교육단체들이 나설 일이 아니다. 평등이 아닌 경쟁만이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현선해 성균관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