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3. 미 브라운대 강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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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0년 봄 미국 브라운대에서 연 '직업 전선에의 여성'이란 주제의 워크숍에서 필자가 이 대학 무대의상학과 학생들과 얘기하고 있다.

2000년 봄 미국 브라운대 초청으로 나는 다시 프로비던스시를 찾았다. 아이비리그에서 반세기 전 배운 영어 실력으로 강연한다는 것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영문 강연 원고를 미리 써 전문가에게 고쳐 달라고 부탁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영어 수준 이상의 문장이라면 어차피 원고를 안 보고는 한 시간 반의 강연을 끌고나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대로 가자. 내가 영문학자가 아닌 것을 다들 아는데 나름대로 의사 전달만 하면 되지'. 나는 이렇게 마음 먹었다.

강연 전날 워크숍을 열어 각자 준비한 의상 디자인 과제를 들고 나온 무대의상학과 학생들에게 내 의견을 들려주었다. 나는 "무대의상이은 조명을 받았을 때 색상과 소재의 효과를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의상이 배우의 캐릭터보다 먼저 눈에 띄면 실패작"이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저녁 무렵 나는 강연했다. "내가 반세기 전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로 시작해 미국 유학 시절과 한국에서 패션이라는 낯선 분야를 개척하며 겪은 이야기, 한국산 실크로 수출길을 열었던 일과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까지 내 평생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강연이 끝난 뒤에도 30분 이상 질문 공세를 받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질문은,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했느냐"와 "어떤 점이 패션 디자이너로서 가장 힘든 것이었느냐"하는 거였다.

첫 번째 질문에는 아버지에 관한 얘기로 답변했다. 어떠한 혹평이라도 마음에 두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온 것, 그리고 호평보다 혹평이 오히려 이른 시간에 나를 알리는 길이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들려줬다. 두 번째 질문에는 까다롭고 호감이 가지 않는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답했다. 나는 디자이너 생활 초기에 그것을 극복하려고 여러 모로 고민한 끝에 방법을 찾아냈다. 어떤 사람이라도 아름다운 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자는 거였다. 손님의 장점을 찾아내 칭찬하려는 내 진심이 그대로 고객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상대하기 힘든 사람과도 어느새 오가는 정이 생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몇 년 전 신임 총장을 비롯한 브라운대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에서 식사한 적이 있다. 내 강연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평생 일하면서 엄청난 뜻을 이루고자 했다 거나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건 결코 아니었어요. 그저 모든 일을 '도전'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나 혼자 그냥 열심히 한다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진 않지요.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반드시 누군가 지켜보다가 구원의 손길로 나를 한 단계 올려주었습니다." 브라운대 총장은 내 말에 동감한다며 다시 한번 대학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 달라고 했다. 그 분이 내 말에 크게 감동한 건 흑인으로서 브라운대 총장에 오르기까지 들인 그의 엄청난 노력이 순간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노라·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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