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뇌부 줄 대는데도 “수억원”/정당공천 로비(정치와 돈:7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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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표집 성시… 유력자 순금초상화 주문쇄도설/주간연재
13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정국이 총선체제로 전환하면서 선량지망생들이 14대총선의 1차관문인 정당공천을 따내기 위해 공천로비를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더욱이 여야 모두 현역 탈락률이 20∼40%까지 이른다는 방침과 함께 선거구 증설도 최소한 13개 이상은 될 것이라는 「매력」이 겹쳐 출마 희망자들의 공천 로비열기는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때문에 공천 경합자들은 국회의원배지를 달기위해 공천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는 당수뇌부의 집과 사무실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요리조리 「줄」을 찾아다니는데,이 과정에서 수백만원 또는 수억원대까지 청탁자금이 뿌려진다는 소문들이 분분하다.
심지어 시내 화랑가에는 금으로 만든 연판에 유력자의 얼굴을 그려넣은 순금 초상화주문이 잇따른다는 설도 있다.
민주당은 공천전에 일찌감치 지역구 조직책 신청을 받아 현·전직의원은 물론 정치지망생들이 공천이라는 1차관문을 통과하기도 전에 「조직책 따내기」라는 「예비고사」를 먼저 치르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 조직책신청자들은 김대중·이기택 공동대표의 집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고 회의가 열리는 마포당사 대표비서실,조직강화특위(조특)위원 주변등에 진을 쳐 김대표는 이들을 피해 친지집에 묵는 경우가 전보다 잦다는 측근의 얘기.
공천로비의 가장 핵심은 결국 헌금의 액수. 야권통합 이후 민주계 인물이면서 민주계진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S씨가 이번 조특 1차심사에서부터 조직책으로 유력하게 거론되자 민주계측에서는 신민계의 한 실세에게 적어도 1억∼2억원은 쓴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실정.
또 현역의원 물갈이대상에 모의원이 거론되는 이유는 이 지역구를 노리는 한 재력가인 전구구의원이 당지도부에 수억원의 로비를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당내에 파다.
민주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특위원에 포함된 민주계의원의 측근들이 조직책을 희망하는 중간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재력형편에 따라 ▲A급 수억원선 ▲B급 4천만∼5천만원선 ▲C급 5백만원선의 「헌금」을 종용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신민계를 포함,이들 측근들은 양대표 및 조특위원들과 「선」을 대주는 대가로 지망생들로부터 수백만원의 「알선료」를 챙긴다는 말도 있다.
특히 민주당의 과열경쟁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괴문서」가 난무하는 상태로 발전,흑색선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구 민주당 당직자 3인」의 명의로 김대표·조승형 비서실장 등 신민계에 보내진 투서는 민주계 주요인사들의 구체적인 비리사실까지 열거하고 있다.
이 투서에 따르면 A의원은 1억7천만원을,B 전의원은 5천만원을 받았다는 등 확인할 수 없는 설을 잔뜩 나열.
조특위원인 이철 의원은 지난달 초순 충남지역의 한 조직책 신청자가 자신의 의원회관사무실에 두고간 2만평짜리 땅문서를 발견하고 그 신청자에게 연락,『당장 땅문서를 갖고가지 않으면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호통을 쳤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당안팎에서는 『이 신청자가 이의원에게만 로비를 시도했을까』라고 입방아질이 요란.
한 조특위원의 「돈줄」인 재력가는 심사작업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그 위원과 대판 다퉜다는 얘기도 무성하다.
이처럼 각종 잡음이 일자 당지도부는 『심사작업의 실오라기 하나도 새나가면 정보를 흘린 조특위원을 끝까지 추적,제명시키겠다』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최근 조직책 1백2명의 괴문서 명단이 나도는등 추측·억측이 잇따라 신민·민주계가 서로 상대방을 의심. 돈없는 지원자들은 『돈공천은 있을 수 없다』며 자체단결까지 할 정도. 사고당부로 경합이 치열한 전남 담양­장성의 경우 김영광 정책실장·김성수 연청수석부회장·차상열 통일외교위원 등 3명이 단합,「돈·낙하산공천 반대」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아직 공천심사위를 구성하지 않은 민자당측에서도 「물밑로비」가 활발하기는 마찬가지.
지난달 23일 김윤환 총장이 『역대 헌정사를 보면 집권여당의 헌역의원 탈락률이 25∼40% 된다』고 공언하자 세최고위원과 김총장,박철언·최형우장관,김용환 의원 등 「실세」들의 주변에 은근한 로비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내부적 실질심사완료 ▲내년 1월10일 공천심사위 가동 ▲20일 노태우 총재 재가→당무회의를 통한 확정 발표 등의 일정이 알려지면서 출마태세의 인사들은 거액·고가품을 들고 다니며 당지도부의 행보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다는 소문.
이같은 로비는 경합지역일수록 더욱 치열,충남의 한 지역구에서는 현위원장 A의원과 다선의 전국구 B의원이 이곳 실세와의 각별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으며 A의원은 이 실세 측근에게 승용차까지 선물로 주었다는 소문.
조직분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의원들은 민주계·민정계 할 것 없이 김영삼 대표의 발길이 잦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공천로비를 유형별로 보면 ▲눈도장형 ▲환심형 ▲재력과시형 등으로 대별된다.
「눈도장형」은 주로 재력이 없는 사람에게 볼 수 있는데 당대표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알현」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돈도 빽도 없어 그저 위를 바라만 보고 있다』고 토로.
「환심형」은 적정선의 돈을 쓰면서 수뇌부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측으로 각종 행사나 식사모임의 스폰서역할을 자청.
「재력과시형」은 별로 눈에 두드러지진 않지만 뒷거래로 왕창 승부를 본다는 소문.
결국 이같은 로비백태를 보면 『있는 자는 「돈」으로,없는 자는 「몸」으로』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공천을 돈으로 주고 받는 일부 행태는 반드시 개선돼야할 과제다. 그러나 이같은 악습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중앙당이 후보를 하향공천하는 현행제도를 과감히 고쳐 지구당 차원에서 자기후보를 직접 고르도록 당체질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들이다.<정선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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