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파동·예산안말썽 문책/김종호 여 총무 전격 경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친YS계 사퇴… 당직판도 변화
4일 김종호 민자당 총무의 전격사퇴는 날치기파동의 예산안 편법심의에 대한 인책이다.
지난달 26일 무더기 날치기통과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데다 예산삭감과정에서 정부와 불협화음이 일자 당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은 원내사령탑인 김총무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총무의 사퇴는 전형적인 문책성 경질이지만 그보다도 그가 친김영삼 대표계 인물로 분류돼왔다는 점에서 향후 대권문제에 미묘한 파장을 던질 것으로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정기국회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김총무가 중도하차한 것은 「무리수」의 연발에 있었다.
그는 예산안처리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남아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쟁점법안을 수의 우위로 밀어붙여 민주당을 압박했지만 날치기에 대한 국민적 비판으로 강경자세를 철회할 수 밖에 없었고 후유증을 소화하기엔 힘이 달렸다.
특히 강행처리의 책임문제를 놓고 청와대 지시설,김총무의 독자 강행설,김대표의 사전묵인설들이 퍼지고 이 과정에서 서로 책임전가를 하는 「추태」까지 보여 당지도부의 전략부재와 무책임풍조에 대한 당내에 비판이 고조돼왔다.
청와대측은 제주개발법등의 강행처리가 노대통령의 의지때문이라는 야당의 공세를 당이 막아주기는 커녕 책임회피에만 급급하는데 상당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김대표가 여론이 나빠진 28일 『정도로 가야한다』고 날치기와 무관함을 시사하고 그의 측근들이 「청와대 관심」에 따른 강행인 것처럼 흘리고 다니는데 대해 성토도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에 예산안 막판의 여야협상과정에서 정부쪽에 「원칙없는 양보」를 요구,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퇴를 앞당긴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무위의 날치기 통과로 세입쪽의 삭감 묘안을 찾다가 막판에 야당의 관세삭감요구를 김총무가 수락한데 대해 최각규 부총리와 이용만 재무장관은 『정부가 세수추계를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꼴』이라고 강력하게 불만을 표시하면서 당의 협상능력에 의문을 표시했다.
결국 당정내부에 그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견딜 수 없다고 판단,사표를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인책은 김대표에 대한 노대통령의 우회적인 질책표시로도 받아들여지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야당공세를 민자당이 1차적으로 막지 못하고 청와대에까지 파장을 던진데 대한 당총재의 경고라는 관측이다.
노대통령은 이날 아침 김총무의 사표를 대신 들고온 김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당의 역할과 정책의 일관성을 강하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임 이자헌 총무는 「총선전 대권후보결정」을 밀어붙이려는 김대표의 입장에 반대해왔으며 이종찬 의원과 자유경선그룹인 민정계내 신정치연구모임의 멤버다.
때문에 당직자를 통해 「대세론」을 민정계에 주입시키려는 김대표의 전략은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박보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