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트는 시민단체 "무조건 반대 굳어져 고민" 민족통일 실현 강령도 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환경운동연합은 1993년 출범 당시 '사회 평등과 민족 통일 실현' '부의 사회적 재분배' '무분별한 개발사업 저지'라는 강령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달 14년 만에 강령을 바꾸면서 이런 문구들을 모두 뺐다. 대신 '풀뿌리 시민운동'을 명시했다. 경기환경운동연합 안명균 사무처장은 "이미지가 '무조건 반대하는 단체'로 굳어져 고민이 많았다"며 "시대의 흐름에 맞게 활동 방향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운동 위기론'에 직면해 온 시민단체들이 활로를 찾아 나섰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정파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정치 이슈에 함몰돼 시민 생활과 괴리되면서 시민의 외면을 받는 '시민단체'였다. 회원 수 정체와 활동가의 잦은 이직도 골칫거리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더 다가설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치보다 민생에 중점=참여연대는 이달 초 총회에서 민생희망본부.노동사회위원회.시민경제위원회 등 세 개 기구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참여연대는 정치 관련 기구(의정.사법.행정감시센터 등 세 개)보다 경제 관련 기구(사회복지위원회.조세개혁센터 포함 다섯 개)가 더 많아진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그동안 권력 감시 운동에 중점을 뒀지만 올해 운동 방향은 '비정상적 가계 부담을 덜어내자'로 잡았다"고 말했다.

2004년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해 낙천.낙선 운동을 주도했고 '탄핵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지난 모습에서 벗어나 이젠 아파트값과 사교육비 문제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정치 이슈에 주력해 온 시민단체들은 최근 민생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4일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여성 취업과 보육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희망쑥쑥캠페인'을 선포했다. 여연은 그동안 법과 제도 개선에 힘을 쏟았다. 남윤인순 대표는 "이제 가장 큰 문제는 여성의 경제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강댐 건설과 새만금 사업 반대 운동을 이끌어 온 녹색연합도 '시민 속으로, 지역 속으로'를 올해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녹색연합 최승국 사무처장은 "지금까지의 생태운동은 시민들과 거리가 있었다"며 "'우리 동네 온실가스 지도 그리기'와 같이 지역 주민과 연계하는 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몸집은 줄이기=조직 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한때 50명이던 상근자 수를 33명으로 줄였다. 대신 1인당 급여는 30% 정도 올렸다. 박병옥 사무총장은 "낮은 임금으로 활동가들의 이직이 잦아 시민단체로서 지속성의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을 줄이고 대신 활동가의 전문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우리은행으로부터 경영컨설팅을 받은 아름다운가게는 수도권 생산센터 두 곳을 하나로 통합했다. 김수열 협동사무처장은 "초기엔 양적 팽창에 치중했지만 시민단체도 효율적인 운영이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고 밝혔다.

환경연합은 사무총장 선출 방식을 4만 명 회원이 참여하는 직선제에서 대표자 65명의 간선제로 바꿔 지난달 새 사무총장을 선출했다. 의사결정 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집회 대신 블로그.홈피=집회.시위를 열어도 끼리끼리만 뭉칠 뿐 일반 시민의 참여는 저조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식상한 운동 방식 대신 인터넷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싸이월드에 타운홈피를 개설하고 '아파트값 거품 빼기 10만 서포터스' 서명운동을 벌인 경실련은 매우 고무됐다. 보름 만에 서명자가 4만 명을 넘었기 때문이다. 4개월 동안 경실련 홈페이지와 오프라인을 통해 받은 서명이 5000여 건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다. 박정식 커뮤니케이션 국장은 "온라인은 회원과 자원봉사자 모집에도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민영 처장은 "성명.논평.보도자료 중심의 운동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활동가들의 블로그 활동을 적극 권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연합.경실련.함께하는시민행동 등은 이미 포털에서 공식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많은 경우 클릭 수가 10만 건에 달할 정도로 호응이 좋은 편이다.

한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