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훈기자의숫자로보는게임세상] 8,600,000,000,000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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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녀 공부의 최대 걸림돌로 게임이 지목되곤 합니다. 특히 지난해 '바다 이야기' 사건 이후 게임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중독성.도박성 등을 들어 게임을 마냥 백안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게임은 이미 영화를 뛰어넘는 최대의 콘텐트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온라인게임은 글로벌 시장을 리드하는 수출 효자상품이기도 합니다. 새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게임의 실상을 의미 있는 숫자를 통해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8,600,000,000,000원, 국내 게임 시장 규모입니다. 세어 보니 8조6000억원이네요. 문화관광부의 2005년 집계 자료에 나온 수치입니다. 그해 음악 시장 규모는 1조6000억원, 영화는 3조2000억원이었다고 하네요. 게임의 올해 시장 규모는 9조원대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게임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이나 '소비 왕국' 미국과 비교해 보면 어느 수준일까요. 일본의 2005년 게임 시장 규모는 132억 달러(약 12조5000억원)였다고 합니다.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미국도 210억 달러(약 19조8000억원) 정도였습니다. 인구나 소득 수준 등을 감안할 때 국내 게임 시장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매년 20%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 중이죠. 문화관광부는 올해 글로벌 게임 시장 규모를 860억 달러(81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휴대전화 시장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세계 게임 시장은 현재 일본의 소니나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거대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답니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비디오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은 1994년 12월 말 처음 나온 이후 지난해까지 세계적으로 2억5600만 대가 팔렸습니다. 이 게임기로 즐기는 게임 타이틀 판매량도 22억8000만 장이나 됩니다. 게임기와 게임 타이틀 판매 금액을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190조원으로 추정됩니다. MS는 2004년 말 비디오게임기 'X박스'를 팔기 시작해 올해 초까지 약 10조원어치(3040만 대)를 팔아치웠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 게임의 최대 히트상품으로 98년에 나온 온라인게임 '리니지'는 현재까지 1조5000억원을 벌어들이는 데 그쳤습니다. 온라인게임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성공한 것이지만 소니나 MS와 비교하면 큰 격차가 느껴집니다. 국내 게임산업의 갈 길이 멀다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게임은 흔히 21세기형 지식산업으로 불립니다. 게임 속엔 이야기(스토리)는 물론 음악.영화 등 모든 종류의 문화 콘텐트가 녹아 있기 때문이죠. 게임은 기술뿐만 아니라 지식 수준이 뒷받침돼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새 산업으로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한국 게임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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