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청문회에선 매혹적인 금발의 CIA 요원 발레리 플레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전 비서실장이 구속된 사건인 '리크(leak) 게이트'의 피해자로,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을 그만둔 발레리 플레임(43)이 16일 드디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원의 정부감독 및 개혁위원회가 CIA의 동의를 얻어 개최한 청문회에 출석한 것이다.

청문회장엔 '매혹적인 금발의 미인'(워싱턴포스트)인 플레임의 증언을 듣기 위해 많은 청중이 몰렸다. 기자들의 취재경쟁도 뜨거웠다. 린 웨스트모어랜드 의원(공화)이 "프로야구 스타 선수 중 누구도 이처럼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혹시 내가 다소 흥분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스파이에게 질문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플레임은 미소를 지으며 "나는 증언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대꾸했다.

플레임은 증언에서 "내 신분이 백악관과 국무부의 고위관리들에 의해 경솔하게 취급됐다"며 "2003년 이름이 드러나자 나는 고도의 훈련을 받았던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나라를 위해 20년을 일한 나의 신분을 정부가 보호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누가 CIA에서 일하겠는가"라는 반문도 던졌다.

그는 신분이 드러나기 전까지 중동 등에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를 위한 정보 수집활동을 했다. 그런 그의 정체는 남편인 조 윌슨 전 이라크 대리대사가 2003년 7월 뉴욕타임스에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정보를 조작했다"는 기고를 한 직후 공개됐다.

조사 결과 그의 신분을 언론에 흘린 사람은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부장관, 칼 로브 백악관 부실장 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윌슨에게 보복을 가하려는 의도에서 플레임의 신분을 누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기소되지 않았으며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루이스 리비만 위증.사법방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플레임은 "나의 신분을 드러낸 신문을 읽고 속이 뒤집혔다"며 "그 순간 나의 경력이 끝났음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라를 사랑했으므로 나의 업무를 사랑했다"며 "정보수집 활동은 과학보다 예술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보가 정치적 의도에 의해 오염된다면 그건 쓸모가 없거나 더 나쁜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이라크의 WMD 개발과 관련한 정보를 왜곡한 사실을 꼬집은 것이다.

플레임은 '민주당원 아니냐'는 공화당 의원 질문에 "그렇다"면서도 "나와 남편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일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플레임은 남편과 함께 CIA 요원 생활과 '리크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공평한 게임(Fair Game)'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러나 CIA가 아직 시판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플레임은 "신분 누설로 큰 피해를 보았다"며 체니 부통령 등을 상대로 한 소송도 제기한 만큼 재판 결과도 주목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leesi@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