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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재정형편나빠 운영에 진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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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똑같은 교향악단이라도 어떤 지휘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어낸다고들 말한다. 지휘자가 그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또 저마다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또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1백명 연주자들과 얼마나 완전한 호흡을 이뤄낼 수 있는지가 교향악단의 음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휘자는 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지휘기술, 그리고 연주단원들을 두루 포용하고 이끌 수 있는 인간적 역량을 갖춰야 하지만 불행히도 국내에는 이처럼 재덕을 겸비한 지휘자가 흔치않다. 약30개를 헤아리는 국내 교향악단들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문제점들 가운데하나가 바로 적절한 상임지휘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향악단 지휘자는 연극의 연출가, 영화에서는 감독, 발레의 안무가와 견줄만한 역할을 하지만 공연 때 청중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낸다는 점이 다른 예술분야의 총책임자들과 다르다. 따라서 베를린 필의 카라얀을 「음악의 황제」라 불렀듯이 지휘자에게는 지휘능력과 별개의 신성이나 전설적 이야기가 따르기도 한다.
국내에는 전문지휘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니와 그들이 나름의 음악적 소신과 기량을 펼 수 있는 여건도 그리 신통치 않다. 정기적 연주활동이 가능한 직업 교향악단의 대부분이 각 시에 소속돼 있어 예술적 이해와 안목이 없는 관료들과 끊임없이 부딪치며 이들을 설득하는 일만으로도 웬만한 지휘자들은 기진맥진하게 된다. 활동예산도 거의 예외 없이 태부족인데 그나마 민간교향악단들의 재정형편은 더욱 보잘 것 없다. 기업체의 후원이나 문예진흥기금 유치, 심지어 연주력보다는 재력(협연료)을 고려한 협연자 선정 등을 통해 교향악단 운영예산 마련에 안간힘을 써야한다. 대부분의 교향악단 지휘자들은 작품연구라든가 단원 선발과 훈련 및 연주활동 등의 「본업」은 젖혀놓고 그 밖의 잡다한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빼앗겨야하는 것이다.
이렇듯 「음악환경」이 열악한 그들에게 좀더 거장다운 면모와 좋은 음악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염치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자(척) 가량의 지휘봉이 마술지팡이라도 되는 냥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화음을 빚어줄 것을 고대한다. 지휘자들이 어디에 나타나든 최고의 경의를 담아 『마에스트로!』라고 외칠만한 지휘의 기적을 일으켜 줬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한다.
지휘자·연주단원·청중이라는 교향악 발전의 3대 요소 가운데서도 지휘자는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라고 주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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