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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정 회장 시작이 아니라, 끝이 반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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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1971년 12월, 정부의 보증서가 날아가자 영국의 버클레이은행을 중심으로 스페인·프랑스·독일(옛 서독)의 은행들이 참여하는 국제 차관단이 구성됐다.

곧이어 스웨덴까지 합류해 마침내 72년 4월, 근 2년을 고생하며 추진했던 차관은 당초 현대가 계획했던 금액보다 많은 5057만 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이 얌전하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국내 문제였다.

사실 정부는 파격적인 특혜를 현대에 제공한 셈이었다. 민간 차관에 정부가 보증을 하겠다고 한 것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5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보증한 예는 처음이었다. 다른 기업에서 볼 때는 그것이 비록 정부의 강력한 4대 핵 공장 건설의 하나에 투입된다 하더라도 웬만한 곳은 보증신청도 받아주지 않으면서 현대만 엄청난 보증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것이었다.

더욱이 71년 무렵은 정부가 차관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원칙 없는 민간 상업차관 도입으로 광범위한 부실기업을 낳게 되자 정부는 69년에 이미 부실 차관기업 중 85개 회사를 은행관리로 넘겼고 123개사가 경영부실에 빠져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까지 소란했다. 71년 6월이었다. 임시국회가 열리자 정해영 의원이 국무위원석을 향해 질타한 것이 시작이었다. 정 의원은 국회 부의장을 지내게 되지만 기업가 출신이기도 했다.

“총리 이하 전 국무위원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정부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다면 기업 못할 사람 어디 있겠어요. 69년 정초부터 터져 나온 부실기업 문제는 기업이 부실을 만든 게 아니라 정부가 자초한 것이오. 두고 보시오. 부실기업 문제는 반드시 온갖 물의를 일으키다가 결국은 보증을 맡은 금융권마저 흔들어 놓을 거요. 이미 차관 업체, 직접투자 업체, 이런 외자기업들이 물건을 전부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설립을 해놓고 국제경쟁력이 없게 되니 결국은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려 71년 상반기만 해도 벌써 120여 개의 중소기업을 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 않으냐 말입니다. 이래 가지고 나중에는 어쩔 작정이오? 국민한테 빚을 전가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작정인가요.”

차관 문제로 국회서 특혜 논란

무서운 경고였다.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을 반추해볼 수 있는 내용들이 함축된 질타였지만 그만큼 차관 문제가 경제계를 덮고 있는 암운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현대는 6월 국회를 피해 12월에 보증을 받았다. 운이 좋다고 했지만 시선이 고울 리는 없었다.

아무리 정부 정책에 동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개인 기업이 건설하는 조선소 건설자금을 정부가 보증해 준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니까 보증에 대한 남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 상황에서는 정부의 보증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었다.

“경제를 부흥시켜야겠다는 박 대통령의 집념이 대단했던 거예요. 그런 집념이 없었으면 정부 보증도 없었겠지. 보증은 부자지간도 안 서는 거라고 하는데 그걸 정부가 나서서 서주고 할 때는 얼마나 많은 검토를 했겠어요. 무조건 빚보증을 기업한테 해줬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 얘기예요. 꼭 필요한 것만 위험을 각오하고 선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국민소득 250달러 언저리밖에 안 되던 시절에 정부가 보증을 안 하면 외국에서 차관을 절대 안 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던 시절인데 어떡할 거예요? 앉아서 굶어 죽어?”

71년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 정도밖에 안됐습니까?
“1000달러를 겨우 턱걸이했던 게 1978년이에요. 그래서 박 대통령을 평가하는 거야. 내가 역대 대통령 다 겪어봤어. 박 대통령이 안 했어도 누군가는 했을 거라고 그러는데 대통령 바뀔 때마다 그 시대가 다르고 여건이 다르고 경제 환경이 다 달랐는데, 그러면 그때마다 특별한 성장이 있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어느 대통령이 그렇게 했어? 어느 대통령 때 해놓은 걸 가지고 지금 우리가 먹고 사느냔 말이야. 박 대통령 보증 선 거 가지고 탓하는 건 아주 나쁜 거야. 박 대통령이 있는 동안에 우리나라 모든 경제가 근대화하지 않았어요? 그건 보통사람 같으면 절대 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지만 아무 경험이 없는 사람한테 사업계획서만 믿고 정부에서 보증을 해주기가 쉬워요? 그 당시엔 보증을 해서 그 사업이 계획서대로 안 되고 부도가 나면 형무소에 집어넣었어. 실제로 여러 사람이 형무소에도 들어갔고. 그런 생각하면 박 대통령이 모든 규율도 추상 같았고 또 의지도 대단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가로서 이만큼 되지 않았겠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들의 견해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소 건설이라는 특정 사안만을 놓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점의 정책이 거대한 정부 조직은 손발을 쉬게 해놓고 모든 가능성을 기업의 협상 결과에만 매달리고 있었다는 것이 결국은 정경유착을 초래하는 근원이 됐다는 것이다. 학계에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 초기에는 실패였다고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는 얘기였다.

사업계획서 2년간이나 보관

불모지나 다름없던 조선업에 도전한다는 것이 짧은 회고로서 모두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드라이도크 하나를 완공하기 위해 십수 명의 스파이를 일본에 밀파해야 했던 일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추억담이다. 그리고 배를 건조한다는 것은 차라리 생명을 거는 도전이었다고 말하는 참모도 있었다. 역동했던 건설 과정은 참모들의 대화 속에 나올 것이지만 정 회장은 계속했다.

어쨌든 대통령을 만나셨을 거 아닙니까?
“만났죠. 귀국해서 방금 얘기한 대로 우선 김학렬 부총리 만나서 보증 문제를 풀었는데 첨에는 대뜸 내 목이 붙어 있게 되느냐, 날아가게 되느냐 그것부터 답하라는 거야, 하하항. 그만큼 초조하게 기다리기도 했지만 명을 걸다시피 한 거예요. 그래서 염려 마시라고, 목에 깁스를 하셔도 될 거라고 했더니 막 웃고 좋아해요. 그러고선 당장 각하한테 보고를 드리겠다고 그러더니 정말 즉각 보고를 올린 모양이야. 사무실에 와있으니까 금방 대통령한테 들어가라고 연락이 왔어요. 대통령께서도 궁금해 하시니까 지체할 시간 없이 청와대로 들어가 경과보고를 드렸지요.”

대통령의 반응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박 대통령은 배를 주문받아야 차관이 된다는 그런 절차를 모르시잖아요. 그래서 조선 자금만 얻은 게 아니라 배 두 척까지 주문을 받아왔다고, 계약서 보시라고, 그랬더니 뭐 어디 비할 수 없이 좋아하셨죠. 파안대소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정부가 전적으로 도와줄 테니 기공식부터 곧 하라고 말이지. 하하항. 그런데 내가 깜짝 놀랐지만 대통령께서 탁자 서랍을 열더니 사업계획서를 꺼내시네? 우리가 처음에 대통령한테 보고한 사업계획서가 있었잖아요.”

아니, 그걸 2년 가까이나 가지고 있더란 말입니까?
“그걸 대통령이 보고 계셨던 거야. 선생 출신이라서 그런지 꼼꼼하게 하나도 안 버리고 가지고 계시는 거예요. 나는 다 버리고 내용도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러니 거기에 보면 향후 20년까지 내다 본 최대 건조 능력·장비·기자재·부지 매입·건조 인력·건조 기술, 뭐 잔뜩 들어있거든? 식은땀이 나는 거야. 그걸 보고 계시니 어떤 내용을 하문하실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아니나 달라? ‘정 회장, 차관도 됐고 배도 수주했고 부지도 마련이 됐다 했고, 그럼 남은 문제는 뭐요?’ 이러시네? 부지는 물색만 했지 매입은 아직 한 게 아니란 말이야. 건조기술이니 인력이니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당시에 기술자가 어딨어요? 26만t 배는 봤다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지만 원래 사업계획서는 말 그대로 계획서니까 뻥이 좀 들어가잖아, 하하항. 좌우간 대통령 앞에서 우물거릴 수도 없고 계획서 내용은 생각 안 나고 죽겠는 거야.”

▶ 1973년 7월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 현대조선소에 들러 정주영 회장과 함께 유조선의 골격 제작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뻥을 좀 넣었다고 그러시지 그랬습니까?
“2년씩이나 갖고 계셨는데 그게 될 소리야? 더구나 좋아하시는 양반한테 실망시켜 드릴 수 있어? 우선 하문은 피해가야 되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시작이 반이라는데 수주까지 해왔으니 반도 더 나간 셈이라고 큰소리쳤지. 그렇게 해서 대충 넘어가야지 어떡해. 아, 그랬더니 이 어른이 안색이 달라져요. 계획서를 덮고는 정색을 하시면서 ‘정 회장, 이 사업이 처음이고, 반드시 성공해야 되는데 시작이 반이라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런 속담 때문에 우리 제품들이 엉망이라고, 우리는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일본에는 그런 속담이 없다고, 일본에는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아예 없고 끝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고, 다 해놓고도 반밖에 못했다는 자세로 다시 살피고 검토를 하고 최선을 다해서 조선소 짓고 건조를 해야지, 그렇게 들떠서 되냐고’. 아이구…. 웃음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나중에 일본에 알아보라 했더니 진짜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없어. 무조건 알겠습니다 하고선 일어섰지 어떡해. 그러니 그때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조선소를 짓는 거예요, 하하항. 그 말을 잊지 못해. 아주 혼났어.”

차관은 해결됐고, 그러면 조선소 건설을 본격화했을 것 아닙니까? 대통령은 부지 매입이 다 된 걸로 알고있는데 현장을 보겠다고 오시면 어떡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그래가지고 사실은 차관 얻어온 걸로 땅을 샀어요. 땅을 부랴부랴 샀는데 그때에 땅이 참 쌌죠. 전부 평당 몇천원씩 했으니까. 만약에 땅주인들이 대통령께서 현대가 부지를 확보한 걸로 알고 계신다, 그런 정보를 알았으면 땅값을 막 올렸을 거야. 땅을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상황이니까 붙잡고 더 내라면 별수 있어요? 하하항. 근데 그걸 모르니까 그쪽에서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막 샀지. 그랬더니 난데없이 땅투기 한다고 난리 났어. 남의 속도 모르고 땅투기가 뭐야? 내 평생에 땅투기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 100만 평이 넘는 땅이라야 된다 싶어가지고 막 사들인 건데 그게 될 소리예요? 근데 진짜 대통령이 내려오신다고 연락이 오잖아요.”

벌판에서 기공식… 박 대통령 참석

기공식이라야 도크도 없이 하는 거니까 벌판에 중장비 쭉 세워놓고 주민들 모아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깐 광활한 벌판으로 만드는 거예요. 천지개벽을 시키는 거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놓고 거기다가 어머어마한 태극기 하나 만들어서 아주 높다랗게 꽂아놓고 이쪽에서 보탕(버튼) 딱 누르면 저 끝에서 펑하면서 오색 먼지가 치솟고, 그게 기공식이거든? 그러자니 눈에 걸리는 게 있으면 안 되잖아요. 막 미는 거지, 하하항. 그렇게 해서 대통령을 맞이했는데, 이 어른이 얼마나 흐뭇해 하시는지 기공식에서 연설 원고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하하항.”

<이코노미스트 8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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