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경제포럼] 참여정부 9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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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지금 심한 분열 양상을 띠고 있다. 현안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너무 달라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내편'이 아니면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본지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본사 경제연구소 주최로 국내의 대표적인 보수.진보성향 경제학자 16명과 함께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JEF)을 시작했다. 4일 오전 열린 첫 모임에선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초청, '참여정부 경제정책 9개월'이란 주제로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였다. [편집자]

▶김대환 교수=참여정부 출범 당시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았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원성이 높은 것은 노사대립 등 사회적 갈등이 불경기와 맞물렸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지나친 부분도 있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탓도 있어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절대적인 액수가 줄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액수를 기준으로 볼 때, 외국인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특히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고부가가치 산업에선 외국인 투자가 늘 것이다.

▶서윤석 교수=참여정부의 컬러가 무엇인가. 출범 초기 발생한 두산중공업 사태를 보면서 컬러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이해했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모든 국민의 참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원칙주의로 돌아선 것 같다. 문제는 이렇게 바뀌는 바람에 참여정부의 컬러가 무엇인지 모르게 되고,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제민 교수=현재 금융시스템은 과도기적인 상황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은행의 부실 대출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줬다. 그 바람에 은행은 별 걱정 없이 재벌에 대출을 해줬다. 또 과거에는 재벌그룹 내부에서 금융시스템이 가동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은행은 자기 책임하에서 대출하면서 기업 돈줄을 죄었고, 재벌도 형편이 좋은 계열사가 다른 기업에 돈을 빌려주기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재벌이 투자를 못하게 됐다. 이런 과도기적인 금융시스템을 극복해야 투자부진 문제가 풀린다.

▶장하준 교수=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것은 노사관계.규제.법인세 문제 때문도 있지만, 이보다는 기업의 경영권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된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은 엄청난 현금을 비축하고 있다. 이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으로 갖고 있는 것은 주주들의 배당 압력과 경영권 방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경영권과 금융시스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투자 부진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고 본다.

▶남성일 교수=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다. 임금상승률이 이렇게 높은데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외국인 투자가들은 대략 10%의 투자수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정도의 투자수익을 올릴 수 없다. 우리 경제 체질은 이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김진표 부총리=생산성 향상보다 임금이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대기업의 조직된 근로자들이 파업 등을 통해 임금을 올리기 때문이다. 대형 노조의 힘으로 경제 논리가 무시된다. 또 현실적으로 대기업만이 투자 여력을 갖고 있다. 전체 투자계획에서 30대 그룹은 80%, 5대 그룹은 53%를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 투자가 이렇게 중요한데도 이들이 투자 결정을 미루고 있어 큰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대기업이 국내투자를 미루는 요인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정치자금 수사가 빨리 끝나야 한다.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기업들은 외국인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는데 정치자금 처리가 늦어지면 그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이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것 같아 걱정이다.

▶안종범 교수=정부는 재정을 조기집행하고, 하반기에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행태를 해마다 반복하고 있다. 처음부터 예산을 제대로 짠다면 훨씬 깔끔하고 계획성 있게 재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세제 측면에서 반시장적인 요인이 많다. 세금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당장은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겠지만, 장기적으론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박원암 교수=내년에도 수출 말고는 별로 기대할 게 없다. 그러나 수출 전망은 올해나 내년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내년에 소비가 4% 늘고, 투자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설득력 있는 대책이 없다면 내년 경제도 올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우리 경제는 경제신용위기 국면에 있다. 또 투자 주체는 대기업인데 규제가 너무 많다. 정부가 투자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이 해결돼야 한다.

▶좌승희 원장=사람은 남에게 인정받아야 사는 맛을 느낀다. 그런데 참여정부뿐 아니라 문민정부 이후 정부들은 기성세대를 퇴출하는 등 사람 사는 맛을 못 느끼게 만들고 있다. 어찌됐든 대기업과 기성 정치인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끌고 왔다. 또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 강남에 사는 것이 무슨 죄인지, 참여정부는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것이 참여정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 균형발전으로 성공한 나라는 없었다. 균형발전이 목적이 되면 나라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균형론자들은 주도세력이 되기보다 오히려 쓴소리를 해서 불균형 발전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金 부총리=그동안 정권은 교체됐지만 중심부 사람들은 그대로 있었다. 주변부 사람들의 상실감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선진사회는 요원하다. 중심과 주변부 사람들의 입장을 바꿔 사회 통합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유세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세계적으로 보유세는 시가의 1%가 일반적이지만, 서울 강남지역의 보유세는 0.02%에 불과하다.

진행=김영욱 전문기자, 정리=이희성 기자<buddy@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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