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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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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영화 '드림걸즈(Dreamgirls)'에서 제니퍼 허드슨(에피 역)의 열창은 압권이다. 폭발적으로 내지르는 목소리는 전율을 느낄 정도다. 노래는 물론 배신과 좌절, 도전과 극복이라는 드라마의 흐름까지 톱스타인 비욘세 놀스(디나 역)를 압도한다.

허드슨은 영화 같은 드림걸이다. 2004년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7위로 탈락한 게 전부였던 그녀가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골든글로브상.배우조합상 등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보그'지의 표지모델이 되고, 에이번사가 올여름 출시하는 새 향수의 광고모델이 됐다. 고향인 시카고에서는 허드슨의 날까지 선포했다.

미국의 문화 코드는 바로 이 '꿈(dream)'이다(클로테르 라파이유, '컬처 코드'). 1960년대 흑인여성 트리오 '슈프림스'를 모델로 한 '드림걸즈'가 성공한 것도 코드 때문이다. 에피는 디나처럼 미인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건…노래하는 것밖에 없다(Only I can do…is singing…)"고 외친다. 그렇지만 꿈은 이뤄질 수 있다.

대통령을 뽑을 때도 이런 기준이 적용된다. 미국인들이 기대하는 대통령의 코드는 비전과 용기라고 한다.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해 갈 용기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라파이유는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등을 예로 들었다. 반대로 비전을 우습게 여긴 아버지 부시는 재선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미국인은 대통령이 완벽한 인간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을 두려워한다. 대통령도 청년답기를 바란다.

젊음에는 두 가지 코드가 있다. 에피의 도전이 그 하나라면 미숙한 '키덜트(kid+adult.어린아이 같은 어른)'의 현실 도피가 또 다른 하나다. 최근 개봉한 영화 '리틀 칠드런(Little Children)'은 두 번째 코드를 보여 준다. 제목처럼 현실로부터 도망치려는 '어른 아이들' 이야기다.

우리 대통령 후보들은 어느 쪽일까. 에피일까, 리틀 칠드런일까. 유권자의 관심은 온통 대통령 선거에 쏠려 있다. 하지만 아직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려 주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상대 후보가 6%를 공약하기에…"라고 실토했던 바로 그 성장률 수치를 비전이라고 내놨을 뿐이다. 현실적으로 민감한 국가적 과제는 먼 산 보기다. 표 계산뿐이다. 선두권의 한나라당 후보들은 경선 규칙을 놓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정권을 다 잡은 걸로 착각이라도 하는지….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