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쉼] 멕시코 칸쿤 34km 명품 해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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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칸쿤(Cancun)' 하면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을 떠올리는 이가 많습니다. 미국 대학생들은 3월 봄방학이 시작되면 광란의 파티를 꿈꾼다고 하죠. 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고, 또 실제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카리브해의 오팔' 칸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칸쿤의 이미지가 요즘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남미에서도 칸쿤을 찾는 이가 크게 늘면서 생긴 변화지요. 덕분에 가족.연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휴양지로 거듭나고 있답니다. 연간 300만 명이 찾는다는 세계적인 휴양지 칸쿤.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낸 마지막 밤, 서울 회사에서 여전히 바쁠 동료들에게 편지 한 장 썼습니다.

<칸쿤> 글·사진=강병철 기자

휴양지의 밤은 뜨겁습니다. 그렇더라도 내일이면 귀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홀로 여행객'의 속내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세계 5대 해변' 중 하나로 불리는 곳까지 와 좋은 인연 하나 못 만들고 가는 노총각 맘이야 더 허전할 밖에요. 그렇더라도 이건 분명 '달콤쌉싸름한' 아쉬움입니다. 지난 일주일, 너무 좋았거든요. 참 오랜만에 제대로 된 햇살 받으며 마음껏 광합성한 느낌. 서울은 꽃샘추위가 한창이라지만, 인천공항에 내려서도 전 더 이상 춥지 않을 듯합니다.

칸쿤이 미국 플로리다 사우스비치, 하와이 와이키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스페인 이비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품 해변'이란 건 벌써 말씀드렸지요? 해변 길이가 무려 34㎞랍니다. 거기 서서 바라본 카리브해 푸른 바다와 그 깊은 속 오팔색 산호초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칸쿤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는 어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멕시코의 대표적 휴양지 아카풀코(Acapulco)에 지겨움을 느낀 사람들이 이 유카탄 반도 끄트머리 마을에 눈독을 들이게 된 거죠. 칸쿤은 고대 마야어(語)로 '황금빛 뱀'이란 뜻입니다. 초기 막대한 개발비를 투자하기로 한 미국인들은 혹 뱀의 저주가 있을까 주저하기도 했다네요.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해변 모양이 숫자 '7'처럼 생겼더랍니다. 해서 '러키 세븐'을 믿고 개발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칸쿤이 '최고의 해변'이란 명성을 얻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치안 문제를 해결하려 멕시코 정부가 한동안 자국민의 출입을 통제하기까지 했다니까요. 덕분에 밤거리는 비교적 안전합니다. 잘됐다 싶어 저도 나이트클럽 순례를 좀 해봤습니다. '코코 봉고'라는 곳이 가장 뜨겁더군요.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 짐 캐리가 마법의 마스크를 쓰고 카메론 디아즈를 유혹한 곳이 바로 이 '코코 봉고'랍니다.

제가 묵은 클럽 메드(Club Med)는 전 세계에서 놀러온 젊은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갓난아이와 어린이도 숙박할 수 있는 곳으로 변한 덕에 가족 단위 휴양객도 적지 않았고요. 탤런트 한가인-연정훈 커플의 신혼여행지였던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졌죠. 올 5월부터는 한국인 직원(GO)도 상주한다네요.

제가 식탐(食貪)이 좀 있습니다. 멀리 왔다고 달라질 리 없겠죠. 생소한 요리들을 신나게 즐겼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먹은 엠파나다(Empanadas)는 정말 우리나라 군만두랑 똑같이 생겼습니다. 크기는 군만두보다 서너 배 큰데, 값은 하나에 2페소(약 170원)밖에 안 하더군요. 엠파나다에는 아바네로(Habanero)라는 고추 소스를 바르게 돼 있습니다. 아, 그런데 정말, 정말정말 맵더군요.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아바네로는 우리나라 청양고추보다 매운맛이 50~100배 더 강하답니다. 일정이 제법 길어 칸쿤 밖 나들이도 해봤습니다. 차를 타고 서쪽으로 200㎞쯤 달려가자 마야문명 유적지인 치첸 이트사(Chichen Itza)가 나타나더군요. 주입식 교육을 받은 저는 '멕시코=아즈텍 문명'이라 달달 외우고 있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거기 있는 마야식 피라미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지난해부터는 직접 올라갈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그렇더라도 문화 유산은 보호해야죠.

칸쿤.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하니 결코 녹록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두 번쯤 더 가보고 싶습니다. 아메리칸항공(AA)이 한국에 취항하면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니 기대해 봐야죠.

자, 이제 짐 챙길 시간입니다. 여러분과의 회식 자리에서 선뵐 테킬라 한 병, 그리고 여성 동료들을 위한 은목걸이 몇 개도 잊지 않고 챙겼습니다. 그러니 저만 잘 쉬다 왔다고 너무 타박하지 말아 주세요. 칸쿤에서건 서울에서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요. 여행도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언제건 떠날 수 있겠죠?

여행정보

한국에서 멕시코 칸쿤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미국 댈러스.로스앤젤레스나 멕시코 멕시코시티를 거쳐야 한다. 아메리칸항공(02-319-3401)은 일본 나리타~댈러스를 경유해 가는 연계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미국 경유라 미국 비자가 꼭 있어야 한다. 여행상품으로는 클럽 메드(02-3452-0123)가 내놓은 5박6일 패키지(기내 1박.아메리칸항공)가 있다. 가격은 성인 1인 기준 250만원이다. 4월 1일~6월 12일 두 사람이 출발하면 한 명은 125만원으로 할인해 준다. 단 4월 말까지 예약. 2000만 달러(약 190억원)를 들여 리노베이션 공사를 한 클럽 메드 칸쿤 빌리지는 지난해 11월 재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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