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쌀시장 개방 신축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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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불가피한 일” 대비책 마련 분주/“3∼5년간 부분개방 하며 체제정비” 방안 유력
협상 6년째를 맞아 최종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에서 관세 및 무역일반협정(GATT)이 「예외없는 관세화」를 밀고 나갈 것으로 알려지자 일본도 「제2의 흑선도래 임박」「근대농정시작이래의 최대변혁」이라는 식으로 경고성을 높이고 있다.
쌀시장의 「부분개방용인」을 자민당 유력인사들이 계속 언론에 홀려 일본 농민의 거센 반발과 충격을 조금씩 완화해 일본은 사실상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라 「개방이후」에 대비한 정책전환작업을 이미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출범 1개월을 맞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내각은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대비한 「UR방탄내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충분한 사전지식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을 전면에 포진,제네바 실무협상 대표로부터 들어오는 각종 정보에 민감히 반응하고 있다.
관세화를 통한 쌀시장개방을 골자로한 둔켈 GATT 사무총장안이 공개된 지난 22일 밤 미야자와 총리와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외상은 둔켈과 긴급회동,더이상 일본도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말해 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미야자와·와타나베가 시사한 「양보」의 내용이 분명치는 않으나 관세화협의에 대응,쌀시장의 「부분개방」을 서두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진다.
가토고이치(가등굉일) 관방장관도 25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우루과이라운드 농업교섭에서 초점이 되고 있는 쌀시장 개방문제에 대해 『27일 또 한차례 차관급회의가 제네바에서 열릴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해 한국·캐나다 등의 동향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편 자민당 간부들도 이날 4역회의를 소집,쌀시장 개방문제에 GATT가 제시한 합의초안과 관련,『협상시안에 불과할뿐 한국등 반대하는 나라도 있다』고 지적,관세화에는 응하지 않는다는 당의 기본방침을 재확인해 국민여론과 크게 어긋나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일본 정부의 한 소식통은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최초단계에 들어감에 따라 27일 미국과 EC차관급회의가 재개되는 것에 때맞춰 정부관계자,자민당 농림의원,쌀관계단체대표를 모아 일본 정부가 마련한 「네가지 시나리오」를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로서는 쌀의 생산·소비·운영의 일원관리를 규정한 「식량관리법」의 개정을 필요로 하는 「관세화」는 될 수 있으면 피하는 한편 미국·EC의 타협내용에 맞춰 어느 정도 양보한다는 선에서 교섭에 임한다는 생각이다.
일본 정부가 마련한 시나리오는 ▲첫단계에서 관세화를 포함한 쌀시장 개방을 거부한다 ▲둘째단계,부분적 시장개방을 제안,교섭을 종결시킨다 ▲셋째단계,당분간은 「부분개방으로 대응하고 장래 관세화를 검토」한다 ▲넷째단계,국내농업의 조성조치를 조건으로 관세화를 받아들인다는 미·EC의 협상진전상황을 지켜보면서 독자적 일본카드를 내놓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둔켈 사무총장이 『크리스마스 이전에 최종합의문 작성에 들어가겠다』고 연내협상 종결의지를 강하게 밝힌바 있고 서울 아태각료회의(APEC)에서도 미국측의 요구에 따라 「연내타결」을 공동성명에 못박고 있어 일본 정부는 협상시간이 충분치 못하다는 판단아래 셋째 시나리오인 「2단계안」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판단,이를 밀고나갈 것으로 보인다.
「2단계 쌀시장개방안」의 골자는 우선 3∼5년간은 쌀시장을 부분개방,수입량을 정부가 관리하면서 관세화에 견딜 수 있는 국내체제를 정비하기 위한 준비기간을 가진 뒤에 관세화를 받아들인다는 방안이다.
구체적으로 일본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내용은 ①최소수입 의무량은 당초 국내소비량의 3%(30만t),상한은 5%(50만t)로 억제한다 ②관세화한 경우 세율은 7백% 정도로 10년간 고정한다 ③쌀생산 농가에 대한 보상이나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한 보조금은 10년간 새라운드에서 삭감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실상 「부분개방」의 효과를 얻는다는 속셈이다.
미야자와정권으로서는 쌀시장 개방문제를 잘못 다뤘다가는 오렌지·쇠고기 수입개방 직후 참의원선거에서 대패한 다케시타(죽하등) 정권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어떻게 해서든 법개정은 피하겠다는 속셈이다.
또 현재의 「여야역전」 상태인 참의원 의석분포로 볼때 식량관리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으로 대장성·농림수산성 등 관계부처는 93년 시장개방이후에 대비,농업보조금 삭감과 농지개발·농촌정비·소득보상제도 도입을 골자로한 「유럽형」 농업예산으로의 대폭 정비 작업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어 「개방반대」 일변도인 우리 정부와 매우 대조적이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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