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여성 서울토론/북대표단 서울 이틀째/몽양묘소 「김일성조화」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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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준비해온 화환 남 항의로 10분만에 철거/남주최측,언론의 북비난 자제·아량 요청
○…여연구 대표(66)는 토론회 공식일정에 앞서 25일 오후 3시쯤 서울 우이동에 안장된 선친 몽양 여운형의 묘소를 찾아 처음으로 참배.
검은색 빌로드 한복에 김일성 배지를 가슴에 단 여대표는 『분단된 조국현실 때문에 지척에 두고도 찾아뵐 수 없어 한이 맺혔다』며 감회에 젖은듯 한동안 말을 잊은채 오열을 계속.
여대표는 선친에 대한 그리움을 읊조리면서도 『조선이 낳은 김일성 장군…』 『장군님께서 아버지를 선각자로 여기셔서…』등 북한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발언을 자주 해 「순수참배」라는 의미를 희석시키기도 했다.
45분만에 끝난 이날 참배에서 여대표는 몽양 추모사업회(회장 여세현)측으로부터 『몽양전집』등 서적 5권과 목각으로 만든 선친의 휘호 등을 선물받고 답례로 『자민족 중상은 민족적 치욕을 자상하는 것이다』라는 다소 정치성을 띤 글을 써주기도 했다.
○…여대표의 참배도중 북에서 직송해온 조화에 「고 몽양 려운형 선생을 추모하며,김일성」이라고 빨간색 바탕에 흰색으로 쓰인 리번이 문제가 돼 추모사업회측과 북측 대표단이 한동안 승강이를 벌이기도.
윗부분에는 진분홍의 김일성 화로,아래쪽에는 빨간색의 김정일화로 된 대형 화환에 걸린 문제의 리번에 대해 『여성들이 하는 일이니 너그럽게 봐달라』는 북측 요구는 『묘소 참배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한다』는 추모사업회측의 강한 항의에 부닥쳐 10여분만에 철거되는 해프닝을 연출.
○…개회식에 이어 윤정옥씨(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 공동대표)의 개회사로 시작된 환영만찬은 단국대 기악과 피아노 트리오의 실내악 연주와 서연중창단의 『청산에 살으리라』,국악인 양승희씨의 가야금 산조등으로 이어지며 다소 가라앉았던 분위기에 흥을 돋우었다.
특히 오정숙씨(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기능보유자)가 『성주풀이』를 들려준뒤 『진도아리랑』에 즉흥대사를 집어넣어 『이렇게 올림피아호텔에서 남북이 함께 만나 어울리니 기쁘네. 만나서 또 헤어져야 하니 눈물이 나네』라며 북측 대변인 정명순씨를 유도,함께 무대에 올라 춤을 춰 갈채를 받기도.
○…이날 오후 6시 호텔2층 임페리얼룸에서 진행된 개회식에는 정의숙 이대 재단이사장·이희호 김대중 민주당 대표 부인·손봉숙 여성정치연구소장·박정희 서울 YWCA회장등 각계 여성인사 3백여명이 참석해 성황.
이우정 대표는 환영사에서 『북측에서 오신 자매들을 굳이 손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며 『오랫동안 못만난 친척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우리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장이 되도록 하자』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여연구 북측 대표도 이대표의 「자매」라는 표현을 의식한듯 『우리 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목이 멘다』고 응답하고 『사상과 제도를 넘어 여성이 앞장서 통일을 이루자』고 호소.
○…남과 북의 비정치적인 민간 여성들의 모임임을 표방한 이번 서울 토론회에 참석한 북측대표들은 서울에 온 25일에만도 두차례에 걸쳐 문익환 목사·임수경 양을 거론,남쪽 참가자들을 긴장시키기도.
이날 오후 4시30분 회의장소인 라마다 올림피아호텔 12층 갤럭시룸에서 가진 북한 및 일본 대표의 서울도착 기자회견에서 북측 대변인 정명순씨는 『서울 방문기간중 문익환 목사 및 임수경 학생 등을 만나고 싶다. 인민이 그들에게 보낸 선물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26일 일부 신문과 방송보도에 대해 『북측이 정치색을 띤 행동이나 발언이 있을 수 있으나 언론이 의도적으로 북측 태도를 정치적인 것으로 매도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거세게 항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전 기자실에 찾아와 「김일성 조화사건」 보도와 관련,『우리측의 아량으로 북측 태도를 이해해야 결실을 얻을 수 있고 통일을 앞당기려는 자세』라고 호소.
○…27일 예정된 북측 대표단의 여연구 대표 모교인 이화여대 방문이 신변안전 문제로 취소될 전망. 주최측은 당국이 현재 이대 총학생회가 대규모 대중집회를 계획하고 있어 신변보장이 어렵다고 통보해옴에 따라 이대 방문시 예상되는 북쪽 대표들의 신변안전과 여대표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판단,북측에 취소를 통보했다.
○특별취재팀
▲장남원(사진부) ▲안희창(북한부) ▲김형수(사진부) ▲노재현(정치부) ▲문경란(생활부) ▲고대훈(사회1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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