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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 외는 기계」 만드는 법학교육|「법학연」주최 심포지엄서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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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흔히 「법질서의 문란」때문이라고들 말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야할 법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비판이다.
22일 서울대 법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은 이 같은 법의 마비증세가 상당부분 법을 가르치는 법학교육의 책임이라는 점을 법학교수들 스스로가 고백하고 반성하는 자리로 주목받았다.
「한국의 법학교육-반성과 개혁」이란 주제의 심포지엄에는 김종운 서울대 총장 외에 법학자인 윤후정 이화여대 총장·이강혁 외국어대 총장·신홍 서울시립대 총장·박남규 창원대 총장 등과 각 대학 법대학장들이 대거 참석, 법학교육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에 무게를 더했다.
참석자들은 우리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법학교육의 책임을 자책하고 그 원인을 분석했으며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우리의 법학교육이 잘못됐다는 인식은 법학교육이 본래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데서 출발한다.
법은 모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강해주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만들어졌는데 흔히 일반인들에게는 정반대로 「구속의 강치」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우리의 법이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정치권력을 보위하는 시녀였다는 비판과 맥을 같이한다. 당연히 법을 찾기보다 무시하거나 피하는 것이 삶의 지혜로 체득된다.
양승규 교수(서울대)는 『총체적 부패의 근본적 원인은 법질서의 문란』이라며 나아가 『우리나라의 정치현상을 보면 과연 이 나라가 법치국가인가 의문을 자아낸다』고 한탄했다.
이 같은 문제는 일차적으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려진다. 합의를 무시하는 날치기로 통과된 법이 엄격한 현실로 행동을 제약하고 형을 가한다.
그 주인공들은 대부분 우리의 법학교육이 길러낸 수재들이다. 따라서 책임은 결국 법학교육으로 돌려진다.
안경환 교수(서울대)의 주제발표는 법학교육이 이뤄지는 법과대학, 특히 대학원의 풍토가 정상적인 교육을 가로막고 있음을 매우 솔직하게 밝혀 주목받았다.
안 교수는 법과대학원의 교육현실에 대해 『심오한 이론을 추구하기에는 결코 학구적이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고, 독창적 학풍을 조성하기에는 교수의 학술활동이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세속적』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주범으로 비판받은 것은 사법시험이었다. 인간존중의 이념과 가치를 가르쳐야할 법학교육이 사법시험준비과정으로 변질돼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해석하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에 진출해 법을 해석·집행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존중의 법정신보다 비록 악법일지라도 법조문을 엄격하게 적용하기에만 애쓰는 본말전도를 초래한다.
이는 교육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강의식교육은 법의 기본정신을 파악하고 법의 창조적 응용을 배우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수가 얘기하는 것을 받아쓰고 외우는 강의식은 그야말로 주입식교육의 연장인 셈이다.
양 교수는 학생이 직접 토론을 벌이는 사례연구식 강의를 제안했다. 법은 이론적인 동시에 실제적인 학문이므로 학생들이 구체적 판례 등을 통해 독자적·창조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사법시험은 대학원교육까지 파행화 시킨다. 대학원이 대부분 사법시험에 미처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의 병역연기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법학연구보다 사법시험준비가 앞서게 된다.
안 교수는 『대학원의 법학교육은 사법시험으로부터 완전히 절연된 독자적 기준과 과정을 정립하지 않는 한 학자양성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없다』고 단정한다.<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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