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 춤사위」 다시 열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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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공옥진
『새로 태어난 공옥진이를 보여 줄랑게요.』
「병신춤」으로 더 잘 알려진 일인창무극의 대가 공옥진씨(60)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레 흥분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지난 3월 다섯시간에 걸친 담석증 수술 끝에 죽을 고비를 용케 넘긴 이 천하의 춤꾼·소리꾼·재담꾼이 6년만의 서울공연(30일 오후 3시30분·7시 호암아트홀)에서 「뭔가 보여주겠다」지 않는가.
전남 영광에서 그를 만나려면 「교촌리 영광예술전수소」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저 이름 석자만 대면된다. 누구나 「우리 영광의 영광」으로 여기는 이 「큰 광대」를 모르는 사람이 적어도 영광읍 일대에는 없는 까닭이다.
『바닷가에 나가면 조개 캐고, 산에 가면 약초도 캐고, 뭐 그러다 흥이 나면 한 바탕 들썩거려도 보고….』 그의 몸짓과 표정이 바뀔 때마다 눈물을 홈치는가 하면, 뱃살을 움켜쥐고 박장대소하던 서울의 열성 관객들 곁을 훌쩍 떠나 영광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지내온 세월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펄에서 게 한 마리 움켜잡다 더덩실 춤추고, 산골짝에서 영지버섯 발견하고는 소리 한 자락 뽑는다. 목말라서 무한개 뽑아먹다 들키면 『할머니, 나 도둑년 아녀라』하며 응석부리고는 『심청가』 한 대목 부르면 이내 누그러진 밭주인 할머니가 그중 나은 무 서 너개 더 뽑아준다. 밤톨 주우러 다니다 맞닥뜨린 산 주인이 『어매, 우리 공선생 아녀?』하며 알밤 서 너되 퍼줄 때 퍼뜩 『흥부가』 한 대목이 생각나면 덩실덩실 춤도 춘다. 이른바 「즉흥안무」다.
손수 캐서 담근 조개젓 반찬에 아침밥 한술 뜨고나서 밥 한 덩이 싸들고 해질 녘까지 산으로 갯가로 헤매며 자연과 만나고, 보통사람들과 만나고, 또 그 속에서 새록새록 우려나는 춤사위며 소리와 뜨겁게 만나는 삶.
저녁상 물리고 나면 그의 몸짓과 소리를 배우러 찾아오는 초·중·고생 제자들을 친손자처럼 반긴다. 소위 레슨비를 받기는커녕 넉넉잖은 주머니 털어 떡이니 빵이니 사다 먹이며 가르치고, 옷까지 해 입혀 각종 예술제에 내보내 입상시키는 재미 또한 여간 아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눈·귀가 트일만하면」 부모들이 취직시켜 돈벌겠다며 데려가 버리는 바람에 「공옥진의 모든 것」을 다 물려줄 평생 제자를 길러낼 수 없는 게 가슴 아프다.
생활이 춤이고, 또 소리가 곧 생활인 그에게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는 이 질문에 대뜸 눈물부터 펑펑 쏟고는 『한풀이』라고 말했다.
그의 가슴에 서리 서리 얽히고 쌓인 한의 굵고 질긴 가닥들 가운데 하나가 귀머거리에 벙어리였던 남동생의 어이없는 죽음. 깡패들이 대못 박힌 판자로 목덜미를 내리찍는 바람에 파상풍으로 죽어가던 동생이 온통 일그러진 얼굴로 사지를 비틀면서도 누이를 반기던 모습은 그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너무도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한다. 그토록 춤을 좋아하던 동생의 넋과 하나가 돼 「병신의 희로애락」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니 그의 춤을 「병신춤」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그가 한때 잃었던 부모를 찾아 헤맬 때 다리 밑 거지며 온갖 장애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감정과 몸짓까지 속속들이 받아들였음에야.
그가 이따금 목포·광주·부산 등지의 경로잔치나 영·호남화합무대등에 초대돼 출연료라도 받게되면 인근 장애자들의 쌀값·연탄값으로 아낌없이 써버려는 것도 그런 사연과 무관치 않다. 장례 치러줄 일가친척조차 없는 장애자들을 위해 판을 사고 공동묘지에 묻어주는 일도 심상 그의 몫이다. 그러니 『굴비는 영광의 자랑, 공여인는 영광의 사당』이라는 버스정류장앞 굴비장수의 얘기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이런 사람이 어찌 장애자들을 「병신취급」하고 희화화하는 병신춤을 출 것인가. 그는 죽을 때까지 불구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더구나 마음속 어느 한구석도 상처 나고 일그러지지 않은 사람은 아예 없다고 믿기 때문에 사실상 병신이란 게 어느 특정한 부류만 일컫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세상사람들이 병신이라고 여기는 장애자들에 대해 그 자신은 남다른 애정을 안고 그들을 대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병신춤」이라 불러도 속상할 것 없다.
그러나 그가 애틋하게 사랑하는 장애자들이 언짢아하는 이름인지라 「병신춤」이란 말이 질색이다. 인간도 어차피 동물인 바에야 차라리 그의 빼어난 장기인 「동물춤」이라고 부른다면 모르지만. 어쨌든 그의 공연예술에 대한 최상의 명칭은 「일인창무극」이라고 밝힌다.
참으로 오랜만의 서울무대 나들이에서 그는 『살풀이춤』『심청전』『흥부전』, 그리고 해학과 품자 그 자체인 「동물춤」을 펼쳐놓는다.
『계획? 무대 위서 죽는 게 소원이제.』
신명난 관객들과 하나돼 웃고 우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뜻의 그다운 표현이다.<영광=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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