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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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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삼성화재 선수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묘한 인연이다. 올스타전도 같은 날(3월 1일) 해서 경쟁을 하더니, 정규 리그 우승팀도 같은 날(14일) 나왔다. 올 시즌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프로배구와 프로농구 이야기다. 프로배구야 이날이 정규 리그 마지막 날이니까 우승팀이 결정되는 게 당연하지만 프로농구는 아직 경기가 남았는데도 우연하게 이날 우승 팀이 확정됐다.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에서는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프로 출범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개막 이후 1위를 놓지 않았지만 정규 리그 마지막 날 대한항공에 진다면 현대캐피탈에 1위를 내줄 수도 있었다. 대한항공에 1세트를 내줘 불안했지만 3-1로 역전승, 2년 연속 2위에 그쳤던 한을 풀었다. 프로농구에서는 울산 모비스가 연장 접전 끝에 LG를 78-77로 꺾고 2년 연속 정규 리그 정상에 올랐다. 2위 KTF가 삼성에 82-94로 지는 바람에 우승을 확정했다. 34승16패가 된 모비스는 3연패에 빠지며 29승(21패)에서 승수를 추가하지 못한 KTF와의 승차를 5게임으로 늘렸다.

*** 삼성화재, 프로배구 처음으로

삼성화재는 14일 대전 홈경기에서 대한항공을 3-1로 눌렀다. 현대캐피탈에 승점 1점이 앞선 삼성화재는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에 직행했다.

정규리그에서 2년 연속 1위를 한 현대캐피탈은 상무를 3-0으로 꺾은 뒤 대한항공이 삼성화재를 잡아 주기를 바랐지만 결국 3위 대한항공과 17일부터 플레이오프(3전2선승제)를 치르게 됐다.

삼성화재는 대한항공에 질 경우 현대캐피탈에 점수 득실률(총득점/총실점)에서 뒤져 2위로 밀릴 수 있었다. 어차피 플레이오프를 준비해야 할 대한항공이 주전을 쉬게 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문용관 대한항공 감독은 정상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문 감독은 경기 전 삼성화재 선수들의 컨디션을 본 뒤 "현대보다 삼성이 PO 상대로 쉬울 수 있다"고 했다. 상승세의 현대캐피탈 대신 주전들의 부상과 체력 저하가 역력한 삼성화재를 PO 상대로 선택했다는 뜻이었다. 반면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PO를 치를 경우 챔피언결정전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총력전을 다짐했다.

삼성화재는 1세트에서 대한항공 보비의 강서브(28득점)에 맥을 추지 못했다. 리시브가 흔들리니 공격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1세트에서 삼성화재 전원이 뽑은 공격 점수(11점)가 보비 혼자 올린 득점과 같았다. 삼성화재는 1세트를 18-25로 내줬다.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관록의 삼성화재는 위기를 반전시키는 힘이 있었다. 계기는 석진욱(9득점.리시브 성공률 77.78%)의 투입이었다. 무릎 부상에서 막 회복했지만 석진욱은 공수를 넘나드는 활약을 펼쳤다. 수비가 안정되자 레안드로(39득점)의 공격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3세트 듀스에서 30-29로 삼성화재가 리드한 상황. 네트 위에 뜬 공에 두 팀 센터 김상우(삼성화재)와 김민욱(대한항공)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밀리면 지는 상황에서 환호를 올린 쪽은 삼성화재였다. 챔프전 직행 티켓이 삼성화재 쪽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신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직행으로 10일가량 여유가 생겼으니 챔프전 준비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장혜수 기자

*** 모비스, 프로농구 2년 연속으로

2연속 우승을 확정한 모비스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고 기뻐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1986년 기아가 창단할 때 유재학이 주장을 맡았어요. 치우침 없이 선수들을 이끌었는데, 큰 힘이 느껴지더라고. '작은 자이언트'였지."

모비스와 LG의 경기가 열린 14일 울산 동천체육관에 방열 경원대 교수가 찾아왔다. 실업팀 기아 창단 당시 방 교수는 감독이었고,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리딩 가드였다.

방 교수는 "동료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었다"고 했다. 91년까지 6년 정도 실업 무대에서 뛰었지만 유 감독은 한국 명가드의 계보를 잇는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이 된 유재학이 이끄는 모비스가 정규리그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모비스는 3쿼터까지 10점을 앞서가며 여유있게 이기는 듯했다. 그러나 4쿼터에서 LG에 추격을 허용, 72-72 동점으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전에서는 오히려 역전을 당했다.

그러나 75-77로 뒤진 종료 1분 전, 양동근이 역전 3점슛을 꽂아넣어 우승을 확정지었다.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를 노리는 양동근은 이날 팀 내 최다 득점인 24점(7어시스트)으로 활약했다.

모비스는 정규리그 4위-5위의 6강 플레이오프(3전2선승제) 승자와 4월 7일부터 4강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를 치른다.

코트에서는 양동근과 외국인 선수 크리스 윌리엄스가 맹활약했지만 모비스의 연속 우승은 유재학 감독의 힘이다.

기아 시절 유 감독과 5년 동안 함께 뛰었던 김유택 엑스포츠 해설위원이 이날 방송 해설을 맡았다. 경기 전 김 위원은 "선수 시절, 유 감독은 그림을 먼저 그리고 경기를 풀어갔다. 나는 골밑에서 입을 떡 벌리고 서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먹기 좋게 쏙쏙 넣어줬다"고 했다.

유 감독은 '수비 농구'의 추종자다. 그는 "수비 농구가 재미없다, 거칠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수비 농구야말로 재미있는 농구라고 생각한다"며 "수비 농구는 전술 농구다. 상대 라인업에 따라 '2점을 허용할 것인가, 3점을 허용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작전을 지시한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전술을 따라가는 것도 농구를 보는 재미"라고 말했다.

유 감독은 선수들에게 "공격을 잘하면 한 경기는 이길 수 있지만 우승을 하려면 수비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방열 감독이 그에게 하던 이야기다.

울산=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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