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세충격파] 팔 수도 버틸 수도 … 퇴로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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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전국 903만 가구의 공동주택가격(안)이 발표됐다. 지난해보다 최대 세 배까지 보유세가 오르는 아파트가 나오는 등 세금 폭탄이 현실화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사진=강정현 기자]

보유세 충격파는 고가 주택 소유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막상 세액을 확인한 집주인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양도세 부담 때문에 매물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팔려고 해도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고는 매수세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퇴로를 터주지 않으면 늘어난 세금만 꼬박꼬박 내야 할 형편이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주택 시장은 당분간 침체를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신규 공급이 적은 지역은 희소가치를 내세워 보유세 증가분을 매도가격에 전가할 수도 있다. 집주인들이 보유세 증가분의 일부를 세입자에게 떠넘길 공산도 커 전세시장이 불안해질 수도 있다.

이번에 오르는 보유세는 12월에 내야 한다. 연말 대선과 겹치는 시기다. 이에 따라 강남권 등에선 매물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일단 두고보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해밀컨설팅 황용천 사장은 "시장에 자연스럽게 매물이 흘러나오도록 유도하려면 세금 폭탄을 퍼붓더라도 양도소득세와 거래세 완화 등 탈출구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눈치 보는 집주인들=실제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을 3년 전에 7억5000만원(당시 시세 기준)에 구입했다가 지금 시세인 13억5000만원에 팔면 양도세(9200만원 정도)를 제외하고 12억6000만원이 남는다. 13억5000만원이면 대치동.압구정동 등의 34~35평형을 살 수 있지만 12억6000만원으로는 32평형 정도로 집을 줄여야 할 판이다.

만약 2년 전에 구입해 6억원 이하에 대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이 없다면 양도세를 무려 1억8630만원이나 내야 한다.

만약 보유세 부담 때문에 집을 팔기로 했다면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에 팔아야 보유세를 내지 않는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강철수공인 강철수 사장은 "봉급생활자들은 자녀 사교육비도 빠듯한 상황에서 한꺼번에 수백만원의 세금을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공인 박현식 사장은 "도곡 주공을 재건축한 도곡렉슬 아파트 주민들 중 예전부터 살았던 원주민들은 그다지 수입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 보유세가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양도세가 워낙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주인이 많다"고 말했다. 강남구 역삼동 선경부동산 김용보 사장도 "강남지역 집주인들은 지금 집을 팔면 주변에 같은 평형으로 갈아탈 수 없어 일단 버텨보자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 주택시장 침체 길어질 듯=분양가 상한제 도입과 담보대출 규제로 집값 약세가 뚜렷하고 거래도 뜸하다. 이런 상황에서 보유세 부담까지 늘게 돼 매수세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분당 등 인기 지역으로 꼽히던 곳에서도 급매물조차 소화되지 않고 있다"며 "세금 부담을 피부로 느낀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기 시작하면 시장 침체는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주택자의 경우 투자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주택부터 처분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부동산업계는 강남보다 강북권이나 수도권 외곽의 부동산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유세 증가가 전.월세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유세 증가분을 전셋값과 월세에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공인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보유세 부담이 늘면서 전.월세 가격 또한 덩달아 상승세를 탔다"고 말했다. 마포구 신수동 월드공인 관계자는 "가뜩이나 강북권 중소형 평형을 중심으로 소폭 오름세를 타고 있는 전세시장이 더욱 불안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글=안장원·함종선 기자<ahnjw@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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