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의료법 개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 의사협회.치과의사협회.한의사협회 등은 21일 병원 문을 닫고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 예정이다. 의협은 개정안에 유사 의료행위를 합법화하고 의사 활동을 제한하는 등의 독소조항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환자 권리.편의와 의료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

찬성 … "의사 아닌 국민 입장서 봐야"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는 현재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민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은 실정이다. 선진국들은 생명공학(BT).나노기술(NT).정보기술(IT)이 융합된 기술이 주로 활용되는 분야인 의료서비스를 미래의 국가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보건의료 산업화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자국에 한정돼 있던 의료서비스 시장을 국가 간 경계를 없애는 쪽으로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선 보건의료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국민의 의료 이용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보건의료체계의 기본틀을 구성하는 의료법을 현재의 규제 중심에서 시대 환경에 부합되도록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부가 최근 의료법 전면 개정안을 마련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정부의 개정안은 크게 두 가지를 추구하고 있다.

첫째, 국민의 의료 이용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환자의 알 권리.편의를 증진하고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의사가 의무적으로 환자에게 치료방법을 설명하도록 해 환자의 진료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 병원에서도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수의 진찰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 같은 병원에서 양방.한방을 동시에 진료받을 수 있어 병원을 두 번 방문하는 불편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병원은 성형.치아보철 등의 진료비용을 환자에게 알려야 하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용을 할인할 수 있어 환자의 의료 이용 비용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경쟁력을 높이고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담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는 경쟁력이 약한 의료법인의 퇴출 구조가 없다. 개정안은 다른 의료법인과 합병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해 경영합리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허용하고, 환자 유치 행위를 일정 정도 인정하며, 의료기관 명칭에 외국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료기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 밖에 의료인에 대한 여러 가지 불합리한 규제들을 대폭 완화.폐지해 의료인의 자율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의료법 개정안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우리 보건의료체계를 시대 환경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한 중요 조치들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의료인단체에서 일부 조항을 문제 삼아 의료법 개정 자체를 반대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의료법 개정은 특정 의료단체 입장이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 또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장기적 발전과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각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의료법은 1951년 제정돼 73년 전면 개정된 이후 기본 틀이 유지돼 왔다. 이제 시대 상황에 맞춰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이신호 보건산업진흥원 의료산업단장

반대 … "사탕 몇개 주고 찬성하라니"

정부가 34년 만에 새로이 전면 개정하겠다며 추진하는'의료법'이 여기저기에서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의사.치과의사.한의사뿐 아니라 간호조무사까지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30여 년간 의학은 과거 300년간의 의학 발전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발전해 왔다. 제도적으로도 1989년 실시된 국민 강제 건강보험으로 인해 국민이 의료에 접근할 수 있는 형평성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소득 증대에 따라 의료에 대한 국민의 욕구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요구하는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 의료법 개정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 사항을 반영하는 동시에 향후 우리나라의 국가 성장 동력으로서 의료 산업화를 견인할 수 있도록 입법돼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달 23일 입법예고한 의료법 전면 개정 법률안을 살펴보면 이런 기대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미국의 극히 일부 주에서, 그것도 제한적으로만 실시되고 있는 '간호 진단'을 우리나라에서 전격적으로 실시하려 한다. 옛날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에 명성을 날렸던 소위 '맨발의 의사'가 생각난다. 역사의 시계를 한 40년 정도 거꾸로 되돌려 볼 생각인가 보다.

그뿐이 아니다. 유사 의료업자는 또 무슨 이야기인가. 지금도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의료에 의해 건강을 망치고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는 국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들을 단속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드러내 놓고 사이비 의료를 할 수 있도록 전면 허용하려 하고 있다. 국민 건강 따위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다.

간호조무사들에 대한 차별은 참으로 해괴하다. 2년여의 교육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한 간호조무사들은 오늘도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며 국민건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진료 보조'가 아닌'간호 보조'의 업무를 하라는 것은 동네 의원에서의 퇴출로 이어지는 생존권 문제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진료 보조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간호조무사 협회의 요구는 묵살하고, '간호 보조'업무만을 원하는 간호사협회의 요구만 들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당혹스러운 일은 이것뿐이 아니다. 정부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부랴부랴 서둘러 입법예고를 하더니 불과 나흘 뒤에는 무려 17개 조항에 걸쳐 오류가 발견됐다며 정정 공고를 냈다. 스스로 졸속 법안임을 자인한 셈이다. 정부는 의사들에게 사탕 몇 개를 쥐여주고는 정부 법안에 찬성해 달라고 추파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의사는 사탕 몇 개 때문에 전문직의 자존심을 버리고 법안에 찬성해 줄 수 없다. 이처럼 '99% 시시껄렁한 졸속 의료법안'이 정부 뜻대로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면 법안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국민이란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봉식 범의료 의료법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의사



이 내용은 조인스탓컴(joins.com)과 미디어 다음(media.daum.net)에서 읽어 보시고, 찬반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15일자 주제였던 '군 복무자 입사시험 때 가산점 부여 부활'에 대해선 924명이 투표한 결과 찬성(95%)이 반대(5%)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 바로잡습니다

3월 15일자 29면 우봉식 범의료 의료법비상대책위 홍보위원장 기고문 중 '2년여의 교육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한 간호조무사'에서 간호조무사의 교육기간은 2년이 아니라 1년이므로 바로잡습니다. 같은 글 '미국의 극히 일부 주에서만 실시되고 있는 간호 진단' 부분에 대해서도 간호협회 측은 "'간호진단'은 워싱턴.뉴욕 주 등 미국의 주요 주 간호법과 프랑스 의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조항"이라는 반론을 밝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