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발사도 「민정비서관」|10·26터지자 호텔들 외상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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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청와대 안식구중에서 좀 별난 흔적을 남긴 이가 한사람 있다고 한다. 69년부터 80년 전두환 대통령이 들어오기까지 12년 간 「청와대 이발실장」을 지낸 P씨다. 「허풍이 좀 있지만 순박한 사람」에서부터 시작해 「싱거운 친구」를 거쳐 「돈키호테」에 이르기까지 평가가 다양한걸 보면 독특하긴 독특했던 모양이다.
청와대 이발실장 또는 대통령전용이발사란 자리는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우선 무방비상태에서 시퍼런 면도칼을 들이대니 경호상 요주의 인물 1호다. 그래서 천하의 나폴레옹도 이발사만큼은 겁냈다는 것이다.

<세상만사 전달 꾼>
그리고 대통령 독대시간으로 따지자면 어느 비서관 못지 않다. 박대통령은 뜸하다싶으면 20여 일에 한번, 피곤할 때는 닷새정도면 꼭 이발사를 불렀고 한번가면 이론상 20∼30분간 별의별(?)이야기를 다할 수 있다. 또 남자들이란 이발할 때만은 마음이 넉넉해지니 대통령 귀도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호조건을 십분 활용한 사람이 P씨라는 것이다. P씨는 바깥에 나가 자기를 「청와대 비서실 소속」이라고 소개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어 박대통령에게 소곤소곤 전해주곤 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 중에서 백미가 「부산 일본군지하요새 보물찾기소동」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Q씨는 『청와대란 이름이 걸려있어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이렇게 기억했다.
『73년쯤인가 하루는 박대통령이 나를 불러 「이발사 P씨가 무슨 보물이야길 하는데 한번이야기를 들어 보라」고 해요. 그래서 P씨를 불렀더니 부산 모대학 지질학과에서 강의한다는 K씨와 함께 오더라고요. 두 사람 얘기는 이랬어요.
「부산 남구 감만동 세칭 거북산밑에 2차 대전 때 일제가 대규모 지하군수기지공장을 건설했었다. 이른바 아카사키 지하요새인데 일본군은 중국대륙에서 노략질한 수천억원 어치 금은보화를 여기에 보관해두었다. 금괴·은화·다이아몬드·금불 상과 망간·니켈 등 광물 수백t이다. 일제는 패전 후 황망히 철수하느라 요새입구만 폭파시켜 놓은 채 보물은 가지고 가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러면서 보물지도까지 보여주는데 펜글씨로 어뢰공장구조·보물매장량 따위가 자세히 그려져 있더라고요. K씨는 「기지사령부에 근무했던 일본군 장교가 한국인 모씨에게 발굴을 부탁하면서 지도를 건네주었다」고 했어요.

<부산보물찾기 소동>
지도를 보거나 그 사람들 설명을 들으면 정말 진짜인 것처럼 느껴질 만했어요. P씨는 「내가 아는 사업가가 파보려고 하는데 그 요새 위에 지금 군부대와 연합철강이 있으니 그쪽에 이야기해 입구만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였죠.』 보물이야기는 급기야 박대통령한테까지 정식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발굴허가가 떨어졌다. 그러나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Q씨는 증언을 이어갔다. 『박대통령한테 보고 드렸더니 아무 말을 안 했어요. 나더러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알고 관계부처에 협조를 구해 파 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죠. 그게 전부예요. 몇 달 지나자 군부대와 연합철강 측에서 알려왔는데 「보물은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다」는 거였어요.』 「로비이스트 P씨」는 또 다른 보물찾기에 손을 댔다. 친구사업가가 『부산·울산 앞 바다에서 일본까지 엄청난 해저케이블이 깔려있다. 건지려면 정부허가가 필요하다』고 하자 박대통령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했다.
또 주변에서 『서울시내 극장 밑에 금불 상이 묻혀있다』는 첩보를 듣고 자기가 직접 파보기도 했다. 해저케이블은 다소 건져냈지만 극장 밑에선 지하수만 잔뜩 퍼내 P씨는 신용도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K씨의 회고.
『부산보물소동으로 Q씨 기분이 상해 있었는데 이번에는 P씨가 또 해저케이블 이야길 꺼냈어요. Q씨는 화가 났던 모양이에요. 깊은 바다 속에 고무로 덮여있는 동케이블이 돈도 안될뿐더러 그런 일을 정부가 허가해주면 공연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거든요.
박대통령한테 이야길 했는데도 허가가 떨어지질 않자 P씨는 Q씨에게 찾아왔었지요. Q씨는 마구 소리치더라고요.
「아니 이발사가 이발이나 하면 됐지 왜 쓸데없는 일에 손대느냐. 그렇지 않아도 각하가 국사에 바쁜데 그런 일까지 신경 쓰도록 해서야 되겠느냐」고요. P씨는 머쓱해져서 돌아갔어요.
Q씨는 그걸로 그치지 않고 「P씨를 조사해야한다」고 민정비서실에 귀띔까지 했다는 거죠.
Q씨는 종전엔 P씨에게 머리를 깎았으나 그 후론 발을 끊고 바깥엘 다녔어요.』 청와대부속실에 근무했던 또 다른 K씨는 P씨의 「허풍」은 인정하면서도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청와대 내에는 실장이 3명이라는 농담이 있었어요. 비서실장·경호실장에 이발실장 P씨라는 거죠. 사실 이발실에 있던 직원 3∼4명이 P씨를 「실장님」이라고 깍듯이 모셨죠.
P씨는 「나는 대통령 머리를 깎는 사람」이라는 프라이드가 대단했어요. 일반비서관은 감히 P씨한테 머리손질을 부탁할 엄두를 못 냈지요.
그때 분위기를 보면 그렇다고 P씨가 이상한 계산을 한 건 아니에요. 왜 「높은 사람 모신다」는 순박성 있잖아요. 박대통령도 그런 P씨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보물이야기 같은 것도 너그러이 들어준걸 거예요.』

<「제3의 실장」으로>
취재과정에서 마주친 P씨는 실제로 독특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도 지방에서 「보물발굴」관계사업을 한다는 P씨는 박대통령이야기를 하면서 두 번씩이나 목이 메었다.
『박대통령 그 양반만 생각하면 참 가슴아픕니다. 러닝셔츠를 입었는데 낡아 목 부분이 해져있고 좀이 슨 것처럼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나있었어요.
허리띠는 또 몇 십 년을 매었던지 두 겹 가죽이 떨어져 따로 놀고 구멍은 늘어나 연필자루가 드나들 정도였으니까요. 자기 욕심은 그렇게 없던 양반이….』 P씨는 『아직도 보물은 묻혀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박대통령에게 여러 가지 발굴사업을 건의한 것은 「신념가」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운전사는 총경대우>
『박대통령이 어떤 분인데요. 내가 욕심이 있었다면 그런 말을 들어주었겠습니까. 박대통령은 「임자, 내 정보비 따로 줄 테니 정보를 모아 나한테 들려줘」라고 하신 적도 있어요. 부산 보물 건만 해도 그래요. 그때 팠던 사람들이 돈도 떨어지고 장비도 부족해 실패했기, 조건만 좋아지면 틀림없이 성공할 거예요.』 P씨는 박대통령과 인연을 맺게된 과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낙동강하류지방에서 가난한 농사꾼 집안 7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13세 때 도회지로 나와 이발소 청소부터 시작했지요. 부산·제주도를 떠돌다 서울 효자동에 터를 잡았어요.
내 나이 27세 땐가 박정희 장군이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로 들어가는데 우리 이발소 앞을 지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이발소직원 4명 모두 흰 가운을 입혀 문밖에 나가 대통령 차를 향해 인사하도록 했어요. 박대통령한테 이곳에 이발소가 있다는 걸 알리려고요. 대통령 머리 한번 깎아봐야겠다는 야심이 있었거든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어느 날 경호원이 지만군을 데려오더군요. 그리고 몇 달 지나자 검정색 지프가 와 탔는데 가보니 손님이 박대통령이었어요.』 청와대 그림자부대는 P씨처럼 각자가 목격했던 권력자의 프라이버시를 가지고 있다. 1호차(대통령차) 운전수였던 이타관씨는 군 시절부터 하사관으로 박정희 장군을 모셔 비밀보따리가 크다고 한다.
대통령 차는 역시 달라 그는 「수송관」으로 불리면서 「경찰총경」직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운전직 공무원 중에서 가장 높이 오른 벼슬이었다. 그는 『내가 뭘 아는 게 있느냐』며 입을 닫고있다.
75년부터 지난해까지 청와대 상주 요리사중 한사람이었던 이상주씨(51)는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 4인 대통령의 입맛을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10·26 다음날부터 장례를 치러내는데 호텔에서 「대금지불을 보증할 사람이 없다」며 한동안 재료를 주지 않아 기가 막혔다』는 사연을 갖고있다.
청와대 꽃꽂이를 전담했던 화예가 임화공 여사(69)는 육여사 서거 후 17년 동안 한식날, 8·15, 추석, 섣달그믐 네 차례 국립묘지를 찾아가 묘소에 꽃을 바쳐오고 있다.
박대통령에 대한 세평이 어느 쪽이든 무명의 그림자그룹 마음속에 박대통령은 『나라 위해 애쓰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주군』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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