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건」이 남긴 교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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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가 일단 추징금을 내기로 급선회 결정함으로써 정부와 대기업이 맞붙게될 가파른 위기국면을 한숨 넘기게 되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번 현대 정회장의 세금거부 선언을 계기로 해서 다시 한번 더 짚고 넘어가야할 몇가지 중대한 교훈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첫째,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맡아왔던 대기업의 총수가 어째서 구멍가게 주인도 생각할 수 없는 납세거부라는 몰지각한 판단과 선언을 공공연히 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물론 여기엔 공적으로 표명할 수 없는 은밀하고도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여기에서 파생되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한다고 할지라도,현대의 납세거부 소동은 국가의 조세권에 대한 정면도전이었고 국가의 공신력과 국민의 납세의무에 혼선과 불신을 조장하는 분위기를 한때나마 조장했다는 잘못은 어떤 명분으로도 면할 길 없을 것이다.
둘째,결국 세금을 낼 수 밖에 없는 번복결정을 하면서도 거부선언을 한 배경에는 변칙증여와 탈법적 상속이라는 경제범죄를 정치적 보복이라는 국면으로 왜곡하고 희석시키려는 저의가 있을 수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했다.
기왕에 낼 세금이라면 일단 정치적 문제로 이번 사건을 한번 반전시킨 다음 현대에 쏠릴 비난을 희석시키자는 의도가 엿보이고 어떤 점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얻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염려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희석 작전이 향후에는 통할 수도 없고 통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환기코자 하는데 있다.
셋째,이번 현대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사회적 위치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대기업은 그 사회적 기능에 관해 많은 논란을 자아내고 있다.
국민경제의 중요한 주역임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혜택을 받아 성장하지 않았느냐,부를 사적으로 독점하고 있지 않느냐,도덕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바가 있느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기업은 항상 국민의 시선속에 있다고 봐야한다. 행여 우리를 어찌하겠는가,우리는 부동이다 하는 오만하고 군림하는 자세를 대기업이 갖는다면 그것은 국민을 얕보는 일이며,결국 경제계 전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 대기업이 좀 더 겸허하고 솔직하게 국민의 편에 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납세거부가 상식을 벗어난 망동이고 탈법과 탈세를 정치적 음모로 전환시키려는 의도 또한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이 지극히 마땅한 일이 왜곡되고 변질되지 않게끔 정부 또한 바른 자세와 일관된 정책의지로 임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에서 겪은 뼈아픈 교훈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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