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물가 오른 만큼 근소세 부담 줄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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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4년간 근로자의 소득은 16% 증가했는데 대출이자는 24%, 세금은 38%나 늘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 근로자들이 지고 있는 세금부담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이로 인한 불만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통계다. 그런데 이런 통계를 보면서 의문이 든다. 어떻게 소득보다 세금이 더 늘어날 수 있는가. 그것도 어느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계층의 세금 증가가 소득 증가보다 클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을 푸는 열쇠는 바로 일정 기간 동안 소득세 제도를 내버려 두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세금의 증가가 소득의 증가보다 더 급격히 상승하게 된 것은 상당기간 동안 소득세 체계를 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득 증가에 포함돼 그 효과를 상쇄시키는 물가 상승이라는 요소가 소득세 제도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소득세법이 개정돼 온 과정을 살펴보면 소득세 부담을 줄여주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매년 발생하는 물가 상승에 대한 대처는 턱없이 부족했다. 2001년까지는 간헐적이나마 소득세율을 인하함과 동시에 소득공제의 비율을 높여 소득세 부담을 덜어주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4년간은 그 어떤 조정도 하지 않았다. 2005년 모든 구간의 세율을 1%씩 인하하기 전까지는 소득세가 늘어나도록 그냥 방치했던 것이다.

그동안 소득수준에 따라 얼마나 세금이 늘었나를 확인하기 위해 2002년의 소득을 2000만원부터 1억원까지 10개의 구간으로 가정하고 소득의 증가에 따른 소득세의 증가를 계산해 보았다. 2002년 이후의 소득은 2002년 소득을 기초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전 산업 평균임금의 상승률만큼 매년 상승했다고 가정했다. 그 결과 2005년의 소득은 2002년에 비해 30%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저소득층의 소득세 부담은 거의 100% 가깝게 증가한 것으로 계산됐다. 물론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소득세 부담 증가율은 감소하지만, 그렇더라도 소득의 증가율보다는 최소 15% 이상 크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7년부터는 소수자 추가공제제도를 폐지해 1~2인 가구의 소득세 부담은 더욱 증가하게 됐다. 이 제도의 의도는 출산 장려에 있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저소득 1~2인 가구는 소득세 부담이 40% 이상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처럼 소득세 세율체계 조정을 상당기간 하지 않으면 소득 상승률보다 세금 증가율이 더 커지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소득세 체계가 물가 상승을 제때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물가가 상승한 만큼만 명목임금이 상승했는데도 소득세의 모든 명목 구간이 물가 상승에 따라 변화하지 않으면 한 단계 높은 세율 구간 적용을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따라서 소득세 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간단한 예로 과표 4000만원 근로자의 경우를 보자. 현재 17% 세율 구간에 속하면서 세금은 대략 540만원이다. 그런데 임금이 10% 인상돼 4400만원이 되었다고 하면 증가한 400만원은 전액 한 단계 높은 세율 구간인 26%를 적용받게 되면서 세금이 추가로 104만원 늘어난다. 다시 말해 임금은 10% 증가했지만 이에 따른 실질구매력은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금은 무려 20% 증가하게 된 것이다.

근로자들이 세금 부담이 무겁다고 느끼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자영업자의 소득이나 금융소득, 또는 부동산소득에 비해 근로자의 소득이 훨씬 더 정확하게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근로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면세점 인상 위주의 처방이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각종 선거 때마다 여야 모두 근로자의 세 부담을 경감한다는 명분으로 면세점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결과 전체 근로소득자 대비 과세 미달자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이미 전체 근로소득자 대비 과세미달자 비율은 50% 수준에 달한다. 이 상태에서 추가적인 면세점 인상은 서민에게 그 혜택이 주어지기보다 중간소득 계층 이상이 혜택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면세점 인상으로 부족해진 세수는 소비세 인상이나 지출 감소, 또는 물가 상승에도 소득세를 오랜 기간 조정하지 않는 식으로 보충돼 왔다. 결국 궁극적인 세 부담은 근로자 중에서도 저소득 근로자에게 주로 돌아간 것이다. 바로 이런 점들로 인해 전체 조세수입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낮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세금 부담이 크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근로자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첫째, 선진국처럼 물가 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소득세 부담을 제거할 수 있는 물가연동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득세 부담의 상승이 한 가정의 실질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2008년 시행되는 근로장려세제의 개선이 필요하다. 근로장려세제란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인해 근로의욕이 저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소득 구간에서는 일할수록 급여를 더 많이 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제 역할을 하려면 기존의 소득세 체계를 보완하는 작업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근로장려세제의 도입을 계기로 그동안 무분별하게 인상된 면세점을 낮추고 세율체계를 조정하는 노력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근로자들이 지출한 각종 경비를 공제해 주는 특별공제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특별공제의 경우 현재 항목이 제한돼 있고 또 한도가 설정돼 있기 때문에 근로자가 실제로 지출하는 비용 중에서 일부만 공제해 주는 데 그치고 있다. 물론 근로소득공제제도를 통해 일률적으로 공제해 주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 유무와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공제해주는 근로소득공제를 줄이는 대신 특별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같이 근로소득공제를 축소하는 과정이 바로 앞서 제시한 면세점의 인하가 되는 것이다. 특별공제제도의 확대는 새로운 공제항목을 신설하거나 공제액의 한도를 인상하는 것이 골자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법인이나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대출이자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받고 있지만 일반 근로자는 제한적으로 공제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근로자들의 주택 대출 등의 가계부채에 대한 대출이자도 기존의 한도를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근로자들의 걱정은 날로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자리 걱정과 함께 날로 커지는 이자 부담과 세금 부담으로 하루 하루가 편치 않다. 이런 여러 걱정 중에서 적어도 세금만큼은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는 노력을 조금만 하면 해결할 수 있다. '비전 2030'이니 '2+5' 같은 거창한 대책보다 이런 세금 불만을 줄여주는 조그만 노력이 우리 국민에게 더 시급하고 피부에 와 닿는다는 것을 왜 모를까.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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