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옐친 “연방존속”악수/신연방조약 성립 배경(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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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화국 이해갈려 앞길 험난/러시아공 주도에 카자흐공등 불만
14일 소련 모스크바 교외 노보 오가레보에서 열린 소련국가회의는 연방헌법을 폐지하고 신연방조약에 따라 소련을 「주권국가연방」으로 재구성한다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노보 오가레보 합의는 지난 8월 보수파 쿠데타 실패후 해체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연방이 어떤 형식으로든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것과 소연방의 운명에 더욱 큰 의미를 가질 경제공동체협정이 다음달 비준,가동될 가능성이 커졌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소연방은 과거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에서 주권국가연방으로 국호를 바꾸면서 완전히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노보 오가레보의 합의를 두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하기에는 아직 너무 많은 난관을 남겨 놓고 있다.
비록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올해안으로 새연방 창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의 사임은 물론 소련의 민주개혁이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하는등 의지를 보이고 있고,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도 소연방의 존속이 확실한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신연방의 장래가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연방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그루지야·몰도바는 차치하더라도 우크라이나·우즈베크공화국 등도 그들의 내부문제에 걸려 신연방 참여에 적극적인 자세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다음달 1일 대통령 선거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대표를 신연방문제를 논의하는 회담장에 파견하지 않을 방침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지난 4일 참여를 결정하고 서명한 경제공동체협정도 앞으로 마련될 구체적인 부속협정 및 조항들이 우크라이나공화국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할 경우에만 최고회의에서 비준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어 경제공동체협정에서마저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카자흐공화국도 구성공화국간 권리와 의무가 동등하게 보장되는 주권공화국 연방이어야지 러시아공화국이 신연방내에서 주도권을 행사한다면 신연방의 장래는 밝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 대통령은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주도권이 보장된 신연방의 창설에 합의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국토나 인구 등을 비교하면 카자흐공화국은 러시아공화국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카자흐공화국을 포함하지 않는 신연방 구성은 연방보존이라는 명분을 고려할때 상상할 수 없으며 카자흐공화국이 중앙아시아 5개공화국의 사실상 맹주이기 때문에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현재 소련내 각공화국에서 분출하고 있는 독립열기와 자원·민족주의 경향은 러시아 극단주의자들에게 『왜 러시아가 각 공화국들에 합법적으로 약탈당하는 것만을 보장하는 경제공동체 구성에 집착하느냐』는 주장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소연방 경제대책위 부위원장이 국가회의에 제출한 자료에서 밝히고 있듯 각 공화국의 독자군창설결의와 독자 화폐발행,경제개혁의 속도와 방법 등을 둘러싼 갈등도 점점 러시아공화국내 강경파들의 목소리를 높여주고 있다.
최근 옐친 대통령에게 정치적 패배를 안겨준 체첸­잉구슈사태와 지난 11일 발표된 러시아공화국의 새 내각에 예고르 가이다르 경제담당부총리등 독립파 이론가들이 입각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러시아공화국의 입장에서 보면 각지방공화국의 과도한 평등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반대로 지방공화국들은 러시아가 계속해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자칫 신연방안을 성급하게 체결·비준한다면 러시아에 다시 복속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은 국가회의와 러시아공화국 내각의 발표를 앞두고 지난 10일 모스크바 교외의 한 별장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비밀회동을 갖고 연방의 존속에 합의하고 핵연료·국방·교통문제에 한해서만 연방정부의 관할을 인정하겠다던 당초의 방침을 완화,연방정부의 권한을 외교등 몇개분야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놓고 장시간 토론을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회의를 앞두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올해안으로 신연방의 창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임하겠으며 소련의 민주개혁은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과 옐친 대통령이 연방은 확실히 존속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날의 비밀회동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이 모스크바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소련의 새연방 창설작업은 이처럼 복잡미묘한 공화국간의 이해조정과정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그 운명을 점치기 어려운 것이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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