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UR협상 「카드」로 활용할듯/APEC 각료회의 경제적측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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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불공정 무역국가」제재 강화될 조짐/쌀개방 이견 못좁힐땐 보복 커질듯
아태경제협력(APEC) 제3차 각료회의에서 채택된 「UR관련 서울선언」은 제네바로 보내져 16일부터 열리는 UR실무협상에서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서울선언을 만드는 과정에서 헤이그에서 열린 부시 대통령과 EC(유럽공동체) 지도자들간의 회담에서 의견접근이 이뤄진 사실을 강조했고 「연내,정치적」타결을 선언한 「APEC카드」를 UR협상에 십분 활용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은 이번 APEC회의를 통해 의장국의 이점을 이용,쌀개방 불가의 논리를 폈지만 미국은 거꾸로 쌀수출국이 아닌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동원,우리측의 입을 막았다.
이번 APEC에서 한국이 얻어낸 경제적 성과는 한중무역협정의 연내체결에 합의한 것과 「의장국으로서 위상을 높였다」는 정도다.
이번 APEC회의는 또 한미 통상관계의 현주소를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칼라 힐스는 이봉서 상공부장관과의 회담에서 『한미관계가 잘 돼가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주한 미 상공회의소에서는 『과소비 억제운동은 보호주의의 완곡한 표현이며 한국정부도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특히 「불공정 무역국가」에 대한 무역보복을 규정하고 있는 자국의 301조를 계속 활용할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미국은 이밖에도 통상현안인 방문판매법의 제정과 반도체칩 보호문제 등을 차례로 짚고 넘어갔다.
정부의 한 대미통상 실무자는 『올들어 우리나라가 미국측의 시장개방 요구를 상당부분 받아들임으로써 한미 통상마찰이 잠잠해진 것이 사실이나 물밑에서는 여전히 끓고 있으며 특히 쌀문제가 UR타결에 장애물이 될 경우 상상할 수 없는 무역보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APEC를 통해 『쌀은 경제문제가 아닌 정치,나아가 영혼의 문제』라며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험을 설명했으나 미국측으로부터 『어려움을 이해하나 전체적으로 해결될 문제』(칼라 힐스),『쌀개방문제로 UR를 포기할 것인가』(뉴질랜드 매킨논 부총리)라는 냉담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다.
더욱이 남은 UR협상에서 쌀개방 불가원칙의 천명으로 가뜩이나 협상력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입지가 더 좁아졌다.
정부의 UR협상 실무자는 『세계 3∼4위의 섬유대국인 한국이 UR섬유협상에서조차 발언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일본은 이미 쌀문제로 UR협상을 깨는 「악당」이 되지 않겠다는 자세를 APEC에서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또 최대현안인 역내 무역자유화가 전혀 논의되지 않아 APEC의 한계를 나타냄은 물론 APEC의 방향설정에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커 국무장관은 14일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말레이시아가 제창한 동아시아경제회의(EAEC) 구상을 왜 반대하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미국은 GATT(관세 무역 일반협정)원칙에 맞지않는 소블록이나 EAEC같은 기구를 만들 생각이 없으며 미국이 원하는 것은 「협의기구」일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불참한 말레이시아 외무·통상장관대신 APEC에 참석한 자파르 알바르 법무장관은 『EAEC는 GATT원칙에 충실하고 역내 무역자유화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APEC이 앞으로 베이커가 밝힌대로 「협의기구」에 머무를 것인지 또는,블록화로 나아갈 것인지는 UR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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