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싸움 말릴 “유일한 해결사”/13년만에 귀국한 시아누크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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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임시정부 사전 정지작업에 한창/크메르 루주등 4파협력이 열쇠
조용한 프랑스 식민지를 혁명과 전쟁과 악몽의 땅으로 바꿔놓고 주로 평양에 머무르고 있던 캄보디아의 변덕스러운 지도자 노로돔 시아누크공이 13년만에 14일 귀국했다.
내전 각파를 한데 끌어모아 인도할 캄보디아 국가최고회의(SNC) 의장자격으로 그가 귀국한 이날 헹삼린 캄보디아 대통령이 공항까지 마중나오고 거리는 1백만명의 환영인파로 넘쳐나는등 전국이 축제분위기 일색이다.
「분쟁사파의 조정역」을 자임한 시아누크 의장은 국민들의 열띤 지지를 등에 업고 벌써부터 임시정부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유엔 캄보디아 과도통치기구(UNTAC)의 손발노릇을 하게 될 유엔평화 선발대와 평화유지군은 이미 사회질서 확립작업을 끝내고 분쟁사파의 70% 무장해제를 위한 실사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밖에도 미·일 등 서방국가들이 앞다투어 캄보디아 재건계획에 참여하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고 캄보디아 정부의 훈 센 총리도 시아누크공을 「국부」로 깎듯이 대접하면서 협조를 아끼지 않는등 「새나라 캄보디아」를 향한 첫 걸음은 경쾌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캄보디아의 앞날이 순탄하게 풀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캄보디아 사태는 난마처럼 얽혀 있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각 정파간 이해의 골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재 캄보디아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은 시아누크공 휘하의 민족주의그룹,훈 센 총리의 프놈펜 정부,손 산 전총리가 이끄는 반공적 성격의 크메르 인민민족해방전선(KPNLF),공산주의 그룹인 크메르 루주 등 사파로 집약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골칫거리로 남아있는 집단이 크메르 루주다.
당초 유엔 캄보디아평화안 초안에는 「없어져야 할 세력」으로 명시됐었음에도 불구,사파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현실」때문에 당당한 지분을 갖게된 크메르 루주는 표면적으로만 캄보디아 신체제에 협조하고 있을뿐 아직까지도 본심을 감춘 채 암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메르 루주는 파리캄보디아 평화조약이 조인된 직후 태국 국경지방의 난민캠프 사이트­8로부터 난민들을 내몰아 자파의 지배지역으로 대량 이주시키는 등 일찍부터 총선에 대비한 세력확보에 골몰해왔다.
크메르 루주가 아직은 자신들이 저지른 「1백만학살 만행」에 대한 세계의 비난여론을 의식,은인자중하고 있으나 일단 결정적인 지분싸움이 벌어지면 캄보디아의 실권장악을 위해 「강수」를 서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표면적으로는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시아누크파와 훈 센 총리의 프놈펜 정부사이의 알력도 곧 가시화될 전망이다.
프놈펜 정부는 서방원조를 받는데 없어서는 안될 시아누크공을 「허수아비 대통령」으로 내세운 뒤 캄보디아 정부의 실질적인 권한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될 경우 「캄보디아의 국부」로 자처하는 시아누크공과 마찰을 빚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해외에서 돌아온 망명정치인들의 신당창당붐까지 맞물릴 경우 캄보디아 정치권은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특히 각파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은 유엔당사자들조차 「거의 불가능한 일」로 받아들일만큼 지난한 작업이다.
따라서 시아누크공에게 쏠린 캄보디아 국민들의 기대는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각파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크메르 루주를 다독거리며 임시정부 구성,총선거 실시를 주도할 인물은 현재 시아누크공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70년 론 놀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로 왕위에서 축출됐다가 크메르 루주와 손잡고 76년 잠시 조국에 돌아온 것을 제외하곤 파리·북경·평양 등지에서 「화려하지만 설움많은」망명생활을 해왔던 시아누크공에게는 신캄보디아건설이라는 숙제가 너무나 힘에 겨운 작업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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