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특권,법원판결과 국회현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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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성환 전 의원의 국시발언사건에 관한 서울고법의 판결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범위,검찰의 공소권 남용에 관해 새로운 준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유의원은 5공시절인 지난 86년 10월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또 발언에 앞서 원고를 국회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었다.
당시 검찰은 유의원이 원고를 사전에 언론에 배포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면책특권대상이 되지 않으며 그의 국시발언은 『통일을 위해서라면 반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국가보안법상의 고무·찬양죄를 적용했었다.
의원의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따라서 유의원사건의 핵심쟁점은 그의 국시발언에 용공성이 있느냐,원고배포가 면책특권의 범위에 해당되느냐에 있었다.
이에 대해 사법부는 1심에서 검찰의 주장을 받아 들여 유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했었다.
그러나 이번 2심판결은 1심이 잘못판단했을 뿐 아니라 검찰의 공소제기는 애당초 죄가 되지 않는 일을 죄가 되는 것처럼 소추권을 잘못 행사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 이유는 유의원의 원고배포가 국회의원의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의 부수행위며 의원의 면책특권 범위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남기고 있어 아직 2심판결이 판례일 수는 없다. 그러나 법조계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면책특권의 범위를 확대해석하는 쪽이 다수설이어서 이번 판결이 채택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이 문제와 관련,5공시절 권위주의 정치권력이 검찰의 공소권을 좌지우지했던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다. 유의원 사건은 당시 법리이전에 이른바 좌경용공 논리의 원내확산 차단,개헌논쟁을 사상논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 등에서 실체이상 확대된 측면이 있었다.
지금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내용을 무슨 대역죄라도 저지른듯 여당이 앞장서 날치기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유의원의 구속을 주도한 정부와 민정당 주역들은 공교롭게도 지금 모두 정부·여당내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감회와 함께 공소권 남용에 대한 자성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법원의 면책특권 확대해석이 앞으로 국회활동에 자칫 잘못 미칠 부정적 영향을 경계하며 입법·사법부가 숙고해야할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유의원이 당시 문제를 일으켰을 때 많은 야당 동료의원들까지 방법론상 현명치 못함을 사전에 지적한 바 있다. 같은 표현이라도 얼마든지 점잖게 할 수 있었고 문제를 필요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충고도 여러곳에서 있었다.
우리는 의원들이 흔히 그 시점에서 상식을 초월한 인기발언을 하거나 미리 원고에 주목을 끌만한 내용이나 냄새나는 내용을 담았다가 막상 발언때는 생략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하고 있다. 일설에는 그런 방식으로 불건전한 막후거래를 하거나 정치적인 두 얼굴을 즐기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법원의 의원면책특권 확대판결이 국회와 의원의 권위와 직무수행을 보장하는 순기능의 강화로 연결되자면 국회 스스로의 자정·자계가 반드시 따라야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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