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프랑스' 외치며 자존심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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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74)이 11일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 사실상의 정치 인생 마감을 발표했다. 그는 5월16일 자정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 야인으로 돌아간다.

이 발표 이후 프랑스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일제히 그에 대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장 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는 "휴머니스트 자크 시라크는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골수 드골주의자로 정치인생 40여 년을 보낸 시라크의 정치 인생은 한마디로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이었다는 게 프랑스인들의 평가다.

◆최대 업적은 '자존심 외교'=시라크는 집권기간 내내 '강한 프랑스'를 외치며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1995년에는 국제 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때는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펴는 등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거스르는 유일한 서방 지도자로 남고자 했다.

프랑스어를 사랑하고 영어를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하버드대 유학 시절 택시운전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여서 영어가 유창한데도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프랑스어만 고집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때 한 프랑스 참석자가 영어로 연설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자존심 외교'다.

하지만 12년 집권 동안의 내치 성적표는 좋지 않다. 업적이라곤 월드컵 우승밖에 없다는 비아냥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릴 정도로 여론이 싸늘하다. 프랑스 언론은 경기 침체와 이민자들의 사회 부적응 문제 등을 지적하고 있다. 2005년 파리 근교 폭동 사태와 지난해 최초고용계약(CPE) 무산 등으로 권력 누수 현상을 보이며 급격한 지지율 추락도 경험했다. 최근엔 건강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주의자에서 드골주의자로=32년 파리에서 태어난 시라크는 사회.정치 분야의 그랑제콜(프랑스 특유의 엘리트 교육기관)인 '시앙스포'에 입학해 다니는 동안 공산당이 주도한 반핵운동에 서명하는 등 좌파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프랑스 엘리트 정치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에 들어간 뒤로는 우파인 드골 진영의 정치인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좌에서 우로의 대변신이었다.

그 뒤 줄곧 우파 엘리트 정치인의 코스를 밟는다. 67년 코레즈 지방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조르주 퐁피두 정권에서 장관을 지냈다. 불과 7년 뒤인 74년 42세의 젊은 나이로 총리에 지명된다. 76년에는 프랑스 우파를 아우르는 공화국연합(RPR)을 창당하며 우파의 대표 주자로 나선다. 이듬해 파리시장으로 선출돼 18년간 파리시장으로 일한다.

거칠 것 없던 그는 81년과 88년 대선에서 잇따라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고배를 마셨다. 14년 만인 95년 시라크는 삼수 끝에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 임기가 7년에서 5년으로 바뀐 2002년에는 조스팽이 1차 투표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손쉽게 재선에 성공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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