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밖] '하얀거탑' 주인공 살릴 수 없었던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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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결국 장준혁은 죽었다. MBC 드라마 '하얀거탑' 게시판에는 주인공 장준혁(김명민.사진)을 살려 달라는 탄원이 쏟아졌지만 그 요청은 대답없는 메아리가 됐다. "죽이지 않고도 잘못을 뉘우치게 할 수 있다" "외아들인 장준혁이 죽으면 시골의 홀어머니는 어떡하느냐" "장준혁처럼 맨주먹으로 성공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희망을 꺾지 마라" 등 시청자의 논리도 다양했다.

그러나 애당초 안판석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이런 시청자 의견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판 원작자인 야마자키 도요코와의 약속 때문이다. 제작사인 김종학 프로덕션 측에 따르면 드라마 계약을 맺을 당시 원작자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일부 변형할 수는 있으나 그 정도는 한국 작가와 감독의 양심에 맡기겠다"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기본적인 틀은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였던 셈이다. 일본에서도 아사히TV.후지TV에서 네 차례나 드라마화했지만 병명 정도가 바뀌었을 뿐 주인공이 죽는 구조는 그대로였다.

한국판 '하얀거탑'은 여러 부분에서 '한국화'됐다. 원작에선 주인공이 폐암으로 죽으나 한번도 담배 피우는 장면이 없었던 장준혁은 대신 담관암에 걸리는 것으로 설정이 바뀌었다. 과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노민국(차인표)과의 '수술 배틀'도 원작엔 없던 부분. 하지만 장준혁.최도영의 갈등 구도, 장준혁의 죽음 등 골격은 그대로 유지했다.

원작자와의 약속 때문이 아니더라도 장준혁을 살릴 계획은 없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시종일관 심각했던 극 전개상 갑작스러운 '해피엔딩'은 어울리지 않다는 것. 12년 전 장안의 화제였던 '모래시계'(SBS.김종학 연출)의 막바지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주인공 박태수(최민수)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어떻게 해서든 그를 살려 달라"는 전화가 방송국에 빗발쳤다. 그러나 박태수는 "나 지금 떨고 있니"라는 '명언'을 남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얀거탑'은 11일 시청률 23.2%(TNS미디어코리아)를 기록하며 20회 시리즈를 마감했다. 시청률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탄탄한 구성과 긴박한 설정으로 '드라마다운 드라마'라는 평을 받았다. 상투적 '해피엔딩', 고질적 '연장 방영'이 없는 깔끔한 마무리였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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