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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금잔디」가 아니다(권영빈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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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산주의 체제의 해체와 새질서의 정립이라는 시대적 갈림길에서 최근 소련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두편의 짧은 외신이 눈길을 끈다.
볼셰비키혁명 74주년 기념일인 지난 7일,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수천명이 모여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비난하고 레닌을 찬양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다.
『그대는 나라를 망쳤다. 지옥이 그대를 기다린다』는 비난 문구가 적힌 고르바초프의 너덜거리는 초상화와 반듯한 모양의 레닌 초상화가 대비를 이루며 군중들의 피킷에 담겨 있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광장과 공원 모퉁이에서 나뒹굴던 레닌의 동상이었는데 세상 인심이란 정말 조석변임을 확인시킨다.
○낡은 질서 해체 현상
같은 날,우크라이나 하리코프에서는 소련 전역의 매춘부들이 총회를 열어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화대를 동결키로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유인즉 국가가 인플레로 인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봉사료를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자는 것이다. 『비록 국가가 인민을 착취하더라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갸륵한 주장을 담고 있다.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질서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소련 사회에서 다시 옛날의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복고풍의 세력이 일고 있음과 새질서의 확립을 위해 그래도 뭔가 이룩해 보자는 안간힘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바야흐로 세계가 낡은 질서의 해체와 새 질서의 구축을 위해 요동치고 있고 소련과 동구뿐 아니라 기실 우리 사회도 낡은 질서가 무너지고 새질서의 확립이라는 격동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있는 것이다. 30년의 권위주의 체계가 남겨놓은 부정과 비리의 관행,이 낡은 질서가 하나씩 벗겨지고 무너지는 해체의 과정이 지난 한햇동안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총체적 부패라고 일컬어지는 정치인·기업인의 비리와 부정체계,대학교수와 언론인들이 보여준 후안무치한 지식인 범죄등 마치 부정과 비리의 퍼레이드를 보는듯 하다.
그러나 이 모두가 어제 오늘에 일어난 신종 범죄가 아니라 30년 이래 차곡차곡 쌓인 부정의 관행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신악의 시작이 아니라 구악이 들통나고 까발겨지면서 이젠 관행이 아니라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는 사실이 입증된 구악·구질서의 해체현상인 것이다.
현 정권이 구질서의 해체에도 과감하지 못하고 신 질서의 창출에도 무력함은 물론 통탄스런 일이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 뿌리깊은 악의 행진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사회가 불안해 못살겠다,장사가 안되어 큰 일이다,세마리 용중에서 한마리 지렁이가 되었다고 좌절하고 개탄한 나머지,다시 그 옛날의 금잔디 시절로 되돌아 가자는 향수의 피리소리에 정신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악 잔당들의 향수
아직도 정계·재계·사회일각에서 높은 아성을 쌓고 있는 금잔디 시절의 「잔당들」은 사회가 혼란하고 경제가 어려워지기만 하면 틈을 비집고 나와 「그분의 공적을 누가 흐릴 것인가」 「옛날의 경제성과를 잠식하고 있다」 「사회혼란이 민주의 대가냐」고 약 올리며 활개를 펴고 있다.
뿌리와 줄기가 병들어 나뭇잎이 시들고 떨어지는데도 뿌리의 깊은 병은 고칠 생각하지 않고 시들고 떨어지는 나뭇잎만 안타까워하며 그 옛날의 푸른 나무를 그리워 한다. 그 옛날의 무성했던 나뭇잎은 독한 비료를 한꺼번에 쏟아부운 탓에 일시적으로는 푸르렀겠지만 당시의 비료 독성 때문에 오늘의 나무가 뿌리째 병들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고 있다.
여건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졌으며 목표와 지향점이 그 시대와 전혀 다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고르바초프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쿠데타가 성공할 수 없듯이 소련은 이제 다시 그 옛날의 소련으로 되돌아 갈 수도,가서도 안되는 역사의 흐름을 타고 있다.
우리 또한 그 옛날의 금잔디 시절이 설령 아무리 좋았다한들 되돌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던 가시밭길이 아니었던가.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총체적 혼란은 새 질서의 정립을 위한 해체의 진통이고 시련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새 질서의 정립을 위해 중지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할 때인 것이다. 갈길이 험하다고 되돌아 갈 것인가.
새질서의 정립이란 옛날의 금잔디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이 아니다. 새질서·새모양의 틀을 각기 서있는 자리에서 만들어 내야 하는시대적 소명작업이다. 때문에 대권과 국회의원 배지를 위해 벌이는 지난 시절의 추악한 금권 정치가 아니라 새모양·새기풍의 정치 본보기를 정치인은 제시해야 하고 국민도 반시대적 정치가에겐 돌팔매를 서슴지 않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기업이 병들고 경제가 거덜난다고 그 옛날의 값싼 임금과 정부의 무한정 성원에 미련을 둘일이 아니다. 옛날에는 봐주던 부의 세습이지금와선 왜 안되느냐고 발버둥칠 일이 아니다.
○새 목표 위해 나설때
새기업·새스타일의 기업인상을 기업인 스스로 창출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근로자도 머리끈을 풀어 제치고 내 회사·내 기업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며 자신의 기술과 노동의 생산성을 어떻게 하면 배가 할수 있을지에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할 때가 되었다.
지식인그룹 또한 비아냥과 호박씨 까기로 험한 세상 살아온 얕은 지혜만 부릴 것이 아니라 새질서·새사회의 정립을 위해 무엇을,어떻게 할 것인가 깊이 모색하고 당당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되돌아갈 길없는 절벽에 서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모두가 새목표·새질서 창출을 위해 떨쳐 일어서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주어진 시대적 책무와 역할을 기피하고 등한시한다면 국가를 위해 봉사료를 동결하기로 결정한 소련 매춘부보다 못한 시대적 죄과를 지는 파렴치범으로 후세에 기록될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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